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연 2000% 이자에 SNS 정보까지 요구…대출 중개 플랫폼 ‘불법 사채’ 주의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0만원 구합니다’ 글 올리자
이틀간 50여곳서 문자메시지
상호 밝힌 11곳 중 5곳은 미등록

“회생 중이고 개인사업자입니다. 가능한 곳만 문자 주세요.”

자영업자 A씨는 지난 20일 대출 중개 플랫폼 대출나라에 ‘급전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개인회생 중인 그는 신용등급이 낮아 1·2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A씨의 글을 보고 연락한 대부업체는 100만원을 빌려줄 테니 열흘 뒤 140만원을 갚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연 2000%가 넘는 고금리였다.

지난 31일 대출나라에 따르면 올해 1월 들어 대출나라에는 1만7395건의 대출문의 글이 등록됐다. 경제 여건 악화로 1·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A씨와 같은 저신용자들이 대출 중개 플랫폼을 찾은 것이다. 문제는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법정 최고금리(연 20%)가 훌쩍 넘는 고금리를 요구하는 등 불법 사금융이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A씨 등 대출 중개 플랫폼 이용자들은 이런 곳을 찾는 이유에 대해 “불법 사금융인 것은 안다”면서도 “돈을 빌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합법 대출 중개 플랫폼, 불법 대부 성행

대출 중개 플랫폼 대출나라는 일종의 ‘대출 역경매’가 이루어지는 대부중개업 사이트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필요한 금액과 본인의 연락처를 올리면 대부업체가 연락을 취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대출나라와 비슷한 대출 중개 플랫폼으로 대출몽, 대출세상, 대출고래 등이 있다.

대출 중개 플랫폼은 합법적인 대부중개업체이지만, 이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대부업체 중에는 미등록 대부업체가 섞여 있었다. 기자가 지난 25일 한 대출 중개 플랫폼에 ‘100만원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자 이틀 동안 50곳이 넘는 대부업체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부분의 대부업체는 상호명을 밝히지 않았고, 상호명을 밝힌 11곳 중 5곳은 금융감독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서비스에서 조회되지 않는 미등록 대부업체였다.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를 훌쩍 넘는 고금리를 요구했다. 미등록 대부업체 중 한 곳은 “대부분의 업체들은 소액만 대출해주는데, 저희는 소득만 확인되면 금액을 맞춰드릴 수 있다”며 “대신 저희가 이자가 굉장히 센 편이다. 100만원을 해드리면 일주일 뒤 150만원을 갚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상호명을 밝히지 않은 한 대부업체는 “처음부터 100만원을 해드리기는 어렵다”며 “우선 20만원을 빌리고 일주일 뒤 갚으면 금액을 늘려주겠다”고 했다.

대출 중개 플랫폼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 거래 시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중개 역할을 할 뿐이라 실제 금융소비자와 대부업체가 어떤 거래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 중개 플랫폼에서는 중개만 할 뿐이고 이후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르니 등록된 업체라 하더라도 법정 최고금리를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금융협회가 지난 30일 발표한 ‘2022년 불법사채 연간 이자율’ 자료에 따르면 불법사채의 평균 이자율은 414%에 달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부 중개 플랫폼을 통하더라도 해당 대부업체가 최소한 금융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곳인지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대부업체들의 또 다른 특징은 강압적인 추심이었다.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돈을 빌려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후기 중 하나는 대부업체들이 돈을 빌려줄 때 본인의 개인정보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연락처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한 대출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채무자에게 요구하는 개인정보는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지인 전화번호·카톡 내용도 요구
상환 늦으면 “SNS 공개” 으름장
채무자 주변에 알려 강압적 추심

강압적 추심…카톡 대화 내역까지 요구

대부업체 중에는 채무자에게 본인 연락처 외에 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를 대비해 대신 빚을 갚아달라고 독촉할 수 있을 만큼 친밀한 사이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돈을 빌리기 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여러 번 돈을 빌려봤다는 20대 B씨는 “돈을 빌리기 위해 가족, 지인 포함해 10명의 전화번호와 그들과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갚지 않고 도망쳤을 때 지인에게 연락한다고 겁을 주기 위해 받았던 것 같다”며 “실제로 돈이 늦어지자 SNS에 채무 사실을 올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채권자가 채무자가 대출받은 사실을 제3자에게 알리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대위변제를 요구하는 것은 모두 불법 채권 추심에 해당하는 행위다.

“불법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대출심사 강화에 저신용자 몰려

“불법사채인 걸 모르는 것은 아니야”

대출 중개 플랫폼 이용자들은 불법사채로 연결되기 쉬운 것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모씨도 지난해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생활비를 빌린 경험이 있다. 30만원을 빌리고 일주일 후에 50만원을 갚아야 했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연 3000%가 넘는 말도 안 되는 고금리였지만,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던 김씨는 마지막 수단으로 대출 중개 플랫폼을 찾았다. 그는 “대출 중개 플랫폼에 불법사채가 많은 것은 알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대출을 받기 힘드니 급한 마음에 여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B씨도 “여기 오는 사람들은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더 이상 대출이 나오지 않는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저도 집안 사정 때문에 신용대출을 다 끌어다 쓰고 돈이 모자라서 대출 중개 플랫폼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빌리는 금액이 대부분 100만원 이하의 생계비”라며 “1·2금융권에서도, 등록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못 빌리는 사람들이 불법사채인 것을 알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가 오르고 조달금리가 오르다 보니까 등록 대부업체들도 심사가 더 까다로워졌다”며 “등록 대부업에서도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저신용자들은 대출을 받을 기회가 더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10시간 동안의 타임라인 공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