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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4남매, 58년 만에 눈물의 상봉... 만나게 해 준 열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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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전 두 여동생과 헤어진 장희재 씨(오른쪽 두 번째)와 장택훈 씨(왼쪽)가 동생 장희란 씨(오른쪽), 장경인 씨(왼쪽 두 번째)를 만나고 있다. 장희재 씨는 1965년 3월께 서울 태릉 부근에서 여동생 2명과 헤어졌고, 동작경찰서와 아동권리보장원의 도움을 받아 이날 여동생들과 다시 만났다. 2023.1.31/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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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고 해맑던 우리 동생, 여전히 그대로네...”

3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경찰서 한 회의실에서 장희재(69)·장택훈(67)·장희란(65)·장경인(63)씨 4남매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이날 동작경찰서에선 무려 58년 만에 이들 남매의 상봉이 이뤄졌다.

네 사람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어머니 손에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 장경인씨에 따르면 지난 1963년 3월쯤 셋째 장희란씨와 본인이 어머니를 따라 외출했는데 그 길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노원구 태릉 인근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용산행 전차에 함께 탔다가 어머니 손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장경인씨는 “자고 일어나보니 엄마가 없었다”며 “언니와 함께 경찰에 발견됐다가 아동보호소로 옮겨져 이름은 각각 혜정과 정인으로, 생일은 어머니를 잃어버린 날로 바뀐 채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순간에 고아가 된 장경인씨는 독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셋째 장희란씨는 “너무나 힘들게 살다가 일찍 결혼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길렀다”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은 아동보호소에 입소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며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후 맏언니인 장희재씨와 둘째 장택훈씨는 각자 경기 안양시 등에 흩어져 살면서 그간 부단히 동생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 등에도 출연해봤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장경인씨도 30대 때부터는 가족들을 찾으려 주민센터와 방송국 등을 전전했지만, 부모님 이름조차 기억이 희미했던 탓에 매번 빈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들을 만나게 해 준 건 DNA 감별이었다. 장희재씨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지난 2021년 1월 두 동생에 대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DNA 채취를 한 게 계기였다. DNA 감별은 신체로부터 혈액, 머리카락 등을 채취해 유전정보를 대조하는 기법으로, DNA 검사를 하면 혈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이 실종신고를 한 가족들의 DNA를 채취해 장기실종아동 등의 DNA 자료를 보관하는 아동권리보장원에 보내면,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대조할 DNA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DNA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운 좋게도 비슷한 시기 언니와 오빠를 찾던 막내 장경인씨 역시 경찰에 같은 방식으로 신고를 하고, DNA도 남겨놔 4남매의 상봉이 가능했다. 경찰은 DNA 대조를 통해 희재씨와 경인씨 두 사람이 가족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확인한 후, 2차 DNA 검사를 거쳐 이들이 친자매인 것으로 확인했다. 경인씨가 셋째 희란씨와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덕분에, 끝내 4남매가 모일 수 있었다.

셋째 장희란씨는 이날 “엄마를 보는 게 한평생 소원이었는데, 동생으로부터 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엄마를 찾은 것만큼이나 기뻐 힘이 쭉 빠졌다”고 했다. 장택훈씨는 “두 동생이 원망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기적처럼 만나 더없이 기쁘다”며 “가족끼리 살아온 얘기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김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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