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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미국 하원의장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박홍민의 미국정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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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 7일 하원의장으로 당선된 뒤 선서를 하고 있는 케빈 매카시 의원.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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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큰 어른' 대신 소속정당 지도자인 하원의장
유럽·한국 의회에 없는 다수의 막강한 재량권 보유
규칙위 진출한 강경파, 의장에 강경자세 요구할 듯

지난 1월 7일 새벽, 우여곡절 끝에 미국 연방 하원의장으로 공화당 케빈 매카시 의원이 선출되었다. 총 15번의 투표를 거쳤는데,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이후 양당제가 정착한 이래 표결을 가장 많이 한 것이다. 소수 극우분파의 반란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그들은 하원의장 자리에 왜 이리 집착했을까? 미국 하원의장의 권한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많은 유럽 국가나 한국의 의회와 달리 미국의 하원의장은 정당의 지도자이다. 일반적으로 다수당 원내대표가 의장으로 선출되어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대통령 유고 시 승계 순위 2번째라는 점 이외에도 하원의 특징을 규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를 다수당의 이익을 위해 적극 사용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권한은 본회의에서 누가 발언할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power of recognition)는 것이다. 상원에서는 누구에게나 발언 기회가 주어지고 그 내용과 길이의 제한이 없지만(그래서 필리버스터가 언제나 가능하다), 하원에서는 의장이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몇몇 의원들에게만 말할 기회를 준다. 그래서 미리 하원의장과 다수당 지도부가 짜 놓은 각본에 따라서 본회의가 진행된다.

거기에다가 어떤 법안을 상정하여 어떻게 통과시킬 것인지도 하원의장이 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별규칙(special rules)'을 통하는데, 이것은 본회의에서 항상 적용되는 상설규칙(standing rules)과 달리 개별 법안 하나하나에 대한 의사규칙을 따로 정하는 것이다. 먼저 특정 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에 부의되면, 규칙위원회(Rules Committee)에서 그 법안에 대한 토론규칙(법안 상정 시기와 발언시간 제한 등)과 수정안의 범위(허용여부와 수정내용 등)를 결의안 형태로 작성해 본회의에 같이 올린다. 이어 본회의에서는 먼저 이 특별규칙을 다수결로 통과시킨 후, 거기에서 정한 규칙대로 법안을 상정, 토론하고 통과시킨다.

그런데 특별규칙을 만드는 규칙위원회를 하원의장이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위원회를 다수당 9명과 소수당 4명으로 구성하는 것도 모자라, 다수당 9명의 의원 모두를 하원의장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 대개 당론을 잘 따라왔던 의원들이 선택되고, 이들은 특별규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하원의장과 긴밀히 상의한다.

20세기 초중반 하원의장의 권한이 약했던 시기에는 수정안을 대폭 허용하는 특별규칙(open rule)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 민주당 지도부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수정안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게끔(modified open rule) 변했다. 특히 1990년대 공화당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수정안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특별규칙에 첨부하는 등(structured rule) 매우 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현재는 정당에 상관없이 다수당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특별규칙을 만들어 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미국 의회연구자들은 '하원은 다수당의 무대'라고 말하며 '상원은 개별의원들의 무대'라는 점과 대비시킨다.
한국일보

그래픽=김문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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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달 매카시 하원의장이 공화당 극우분파 의원들에게 약속한 타협안은 의장의 권한에 대해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수당과 소수당 사이의 권력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또 의장이 규칙위원회 소속 의원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 자체를 없애자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규칙위원회에 극우파 의원 3명을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통해 공화당 어젠다에 자신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할 계획인 것이고, 이럴 경우 그들은 하원의장의 권한을 본회의에서 보다 강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어쩌면 매카시 하원의장은 상원의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이전보다 강한 협상력을 보일 수도 있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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