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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군사작전 방불케 하는 北 불법 기름공급…수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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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조선족 이모 씨(52·구속)는 2021년 10월 25일 오후 10시 전북 군산항에 정박해있던 러시아 선적 1만4000t급 유조선 P호에 출항을 지시했다. P호는 직선거리 730㎞를 10여 시간 동안 항해해 제주도 밑 해상에 도착했다.

P호는 다음날인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240㎞, 일본에서 1200㎞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중국 기름배와 접선했다. P호는 접선 해상에 도착하기 전에 위치식별장치(AIS)를 끄고 중국 기름배와 접선하기 1~2시간 동안 바다를 빙빙 돌았다. P호는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중국 기름배와 단파 무전기로만 교신했다. P호는 중국선박에 선박용 기름을 700t씩 수차례에 걸쳐 옮겨 실었다. 기름을 공급받은 중국 선박은 인근에 대기 중인 북한 기름배(3000~6000t급 추정)에 다시 기름을 옮겨 실었다.

31일 해경 등에 따르면 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 승인 없이 북한으로 빠져나간 기름이 총 35회에 걸쳐 약 180억 상당인 1만8200t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해해양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유류 브로커 이모 씨를 구속하고, 국내 한 중소정유 업체 등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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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중국 안팎에선 상당히 알려진 유류 브로커였다. 북한 측이 중국 관계자를 통해 “기름이 있냐”고 문의를 주면 불법 기름 공급을 중개했다. 기름 가격 및 물량 등의 협의는 중국 소셜네트워크인 위챗으로 했다.국내 한 중소 정유업체도 호남 지역에 자회사를 차리고 이 씨의 불법 기름유출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 관계자는 “국내 수사기관은 위성사진을 통해 6차례 북한으로의 불법 기름 유출 정황을 확보했지만, 다른 증거가 부족해 최종 유죄를 입증하진 못 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이 씨 등 3명의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하고 각종 서류, 전자파일, 금융계좌 등 각종 물증을 확보해 혐의입증에 자신이 있고, 추가 사례들까지 밝혀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기름을 공급하는 중국 업체들이 물량이 부족해지자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에 공급된 불법 기름은 출처가 파악되는 국내에서 정유된 물량이 아니라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물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오랜 대북제재로 기름난에 처한 북한이 중국산, 한국산을 가리지 않고 공급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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