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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청라언덕에 새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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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찾은 대구… 역전, 서문시장, 근대거리에 활기가

시인 이상화 골목엔 여행자 발길, “빼앗긴 들에 봄 찾아온 듯”

밥그릇 싸움 하는 정치판엔 쓴소리 “民心 이기는 권력 없지예”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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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었다. 우옛든동 봄은 또 오겄지예 했던 늙은 여인들의 소망은 역병보다 강해서, 그사이 세 번의 봄이 오고 겨울이 물러갔다.

동대구역은 열차에서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땐 봉쇄를 시키니 마니 했으니 누가 오겠어요. 딴 데 겉으면 폭동 일났지. 양반이라서가 아이고, 대구 사람들이 쫌 모지라서. 지 밥그릇 하나 제대로 몬 지키는 사람들이라서.”

서문시장으로 택시를 몰던 기사는 80년대 중반 서울 방산시장에서 지물 장사를 하다 오지게 한 방 맞고 내려와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확진자의 7할이 대구에서 쏟아지던 그때 처음 반년을 쉬었다. “며늘이 선생이제, 딸도 선생이제. 와~ 요 앞 동네도 몬 나가고로 갇혀가 있는데 죽겠데예. 할마시예? 먼저 가뻐렸는데 뭐. 살아 있을 땐 저 눔의 마누라 싶더마는 가뿌니께 그리 아숩고 생각 나네요. 노랫말따나 있을 때 잘하라 카는 거, 그게 맞아요.”

서문시장은 3년 전과 딴 세상이었다. 집에서 뉴스 보기 싫어 불 꺼진 시장에 나와 앉아 있다던 점퍼집 주인은 이제 패딩 바지를 사려는 손님들과 연신 흥정 중이었다. 칼국수 좌판엔 앉을 자리가 없고, 이십 대 여성들은 씨앗호떡을 호호 불며 골목을 누볐다. 철판 위엔 나뭇잎 모양으로 빚은 만두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콩나물, 어묵, 고춧가루를 산처럼 쌓아놓고 끓이는 전골을 들여다보자 노부부가 호객을 했다. “여가 처음이라예? (박근혜) 대통령도 댕겨갔는디. 쫌 있으마 줄 서야 카니 사람 없을 때 퍼뜩 들어오이소.”

젓갈집 맞은편 털실 가게엔 여자들 웃음소리 왁자했다. 점심을 막 배달시켜 먹고 믹스 커피로 입가심하는 중이었다. “코로나 때 대구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했어예. 김천 사람들이 우리 팔공산 미나리를 안 먹었다니까예.” “인자는 코로나가 감기보다 몬한 신세가 됐지마는, 그땐 밖에 나갔다 걸리면 바로 죽는 줄 알았다카요. 서울 사는 딸아가 친정이 대구라카믄 사람들이 상종을 안한께네 내려오도 몬 허고 전화로 엄마 보고 싶다고 찔찔 울었어예.”

3년을 어찌 버텼냐 물으니 “우리가 뚝심 하나는 세계 최고 아입니꺼” 해서 웃음이 터졌다. 대통령은 잘하고 있느냐 묻자, 몇은 “일등이지예, 일등” 하며 엄지를 세우고, 또 몇은 입을 삐죽거렸다. “두고 봐야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경제 살리는 대통령이 최고 아입니꺼.” 코바늘로 수세미를 뜨고 있던 여자는 얼마 전 서문시장 다녀간 영부인 얘기를 했다. “다 좋은데예, 양말 300켤레가 뭡니꺼. 1000켤레는 사서 나눠줘야제, 안 그래요?”

계산성당 지나 3·1만세운동길로 이어지는 청라언덕엔 햇살이 청명했다. 어느 주일학교 아이들이 견학을 왔는지 선교사들 살던 집이며 옛동산병원에서 쓰던 고철 산소통을 골똘히 구경했다. 코로나로 굳게 닫혀 있던 시인 이상화 고택의 대문도 활짝 열렸다. 스탬프에 잉크를 채워넣던 직원이 “사랑방까지 찬찬히 둘러보이소” 하며 반색을 했다. “요샌 서울 분들이 엄청 옵니더. 골목에 웃음소리 들리니 빼앗긴 들에 봄이 오는 것 같아예.”

그러나 봄이 오는 속도는 더뎠다. 약령시는 한산했고, 온 가족이 수건 한 장 더 팔기 위해 찬밥으로 점심을 때우던 타월 가게는 문을 닫았다. 젊은이들 명소라는 김광석 거리도 스산했다. 기타 모양 빵을 팔던 집엔 ‘임대문의’ 팻말이 내걸렸고, 불 꺼진 카페도 여럿 있었다. “물가 치솟지 가스비 폭탄이지, 무슨 수로 장사를 합니꺼. 뜨뜻한 데서 오찬하고 만찬하는 분들은 서민들이 지금 얼마나 고통받는지 짐작도 몬합니더.”

화장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던 명복공원은 고요했다. 방호복 입은 채 영정을 안고 흐느끼던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직후 부임해 참혹한 시간을 오롯이 목도한 소장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루에 (코로나 시신만) 일곱 구를 모셨으니까요.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지요.”

동대구역으로 가는 택시에 오르자 기사가 명복공원 옆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농을 한다. “저게 대구구치소인데 위치 한번 희한하지요. 화장터 내려보면서 저기 가면 진짜 끝이다, 여긴 아직 기회가 있으니 나가면 바르게 살자, 다짐을 안 하겠습니꺼?” 그는 5·18 유족과 계엄군이 화해하는 뉴스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했다. “눈물나데예. 이 조그만 땅덩이서 용서 못할 게 뭐라고. 정치인들도 밥그릇 싸움 고마하고 국민들 돈 걱정, 밥 걱정 않고 살게 협치해주면 좋겠어예. 표하고 얼라는 깨라봐야 안다고 오만한 정치 오래 못 갑니더. 봄 이기는 겨울 없듯이, 민심 이기는 권력 없지예. 진짭니더.”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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