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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시론] 위기의 전경련 ‘구원투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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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오영 전 총장·서울디지털대 일본학과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허창수 회장이 오는 2월 임기 만료를 끝으로 더는 연임하지 않겠다며 얼마 전에 사의를 표명했다. 허 회장은 2011년 전경련 회장직에 오른 이래 다섯 차례 연임하면서 역대 최장수 회장 기록을 세웠다. 허 회장은 지난 9일 비공개로 열린 회장단 회의에서 사의를 밝혔다. 그동안 허 회장과 호흡을 맞췄던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함께 물러날 예정이다. 새 회장 체제에서 전경련에 쇄신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용퇴한 허 회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허 회장의 퇴진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 5단체장의 비공개 만찬 회동에 전경련 회장이 빠지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부활 조짐을 보였던 전경련이 또다시 ‘패싱’된 배경에 대해 내부 개혁과 쇄신없는 전경련을 경제계의 창구로 삼기에 부족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추진했던 단체명 변경과 싱크탱크 기능 강화 등 쇄신안이 유야무야된 상황에서 새 정부가 전경련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5연임 허창수 현 회장 사의 표명

하마평 오너 회장들 대부분 고사

비오너 중에서도 후보 물색해야

중앙일보

전경련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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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심은 누가 차기 회장으로 나설 것인가에 쏠린다. 과거 전경련이 재계 서열을 중시했던 관례를 고려한다면 재계 5위인 신동빈 롯데 회장, 7위인 김승연 한화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 사정과 함께 기업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교적 젊은 세대에 해당하는 이웅렬 코오롱 명예회장과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류진 풍산 회장도 물망에 올랐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고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경련 내부에서 마땅한 인물을 찾기 힘들게 되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등도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손 회장은 고령인 데다 전경련과 경총 통합을 조건으로 내세워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구 회장은 무역협회 회장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굳이 전경련으로 자리를 옮길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김병준 교수는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추대돼 취임을 앞둔 데다 경제계와 인연이 깊지 않아 적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한때 전경련 회장은 ‘재계 총리’로 불렸다. 울산공업단지 조성, 의료보험제도 도입, 88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 월드컵 유치 등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하며 국민경제 발전과 대한민국의 선진국 도약을 견인해 왔다.

2월에 선임되는 전경련 신임 회장은 조직을 재건하고 단순한 경제단체장을 넘어 윤석열 정부의 ‘민간 중심 경제 실현’과 ‘2027년까지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위한 민간 경제계를 대표하는 파트너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단체 맏형’ 자리를 다시 찾아와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런 요구에 맞는 적임자가 회장을 맡아주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지금 전경련은 4대 그룹 등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탈퇴한 상태다. 과거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자경, SK 최종현 회장 같은 중량감과 혁신 역량을 갖춘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전경련 재건과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오너 회장으로 국한하지 말고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정부와 소통 가능한 외부 인사 수혈도 고려해 봄 직하다.

전례도 있다. 비오너 관료 출신으로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유창순 전 회장(19·20대, 1989~1993)이 그런 경우다. 그는 당시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번진 반기업 정서에 맞서 현안을 원만하게 조정하고 조직을 무난하게 이끌어 전경련의 존재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 부문은 민간 중심 경제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소통이 절실히 요구된다. 과거 전경련이 가장 훌륭하게 수행했던 분야인 만큼 앞으로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회장 추대가 더욱더 중요하다. 하지만 전경련 회원사 중에서 차기 회장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뚜렷한 한계가 엿보인다. 발상을 전환해 유능한 ‘구원투수’ 영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오영 전 총장·서울디지털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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