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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문병주 논설위원이 간다] 폐플라스틱서 짜낸 기름… 에너지·기후 두 마리 토끼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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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내는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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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


역대급 한파가 엄습했다. 혹한에 따른 ‘역대급 전력 사용’과 가정에 전달된 ‘역대급 난방비’ 고지서는 국민의 냉가슴을 때렸다. 미국 CNN과 영국 BBC 등은 이번 한파가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극단적 기후 변화가 뉴노멀(New Normalㆍ새로운 표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욱 자주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때문에 국가 간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규제를 중심으로 기업들의 친환경 전략과 활동이 힘을 받고 있다.



“폐플라스틱 80%가 기름으로”



지난 18일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 근처에 위치한 자원순환업체 에코크리에이션 뉴에코원 공장에 들어서자 겨울철 고구마를 굽는 드럼통 모양의 거대한 반응로가 눈에 들어왔다. 방화유리 구조물을 통해 보니 내부가 활활 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이용해 기름(열분해유)을 생산한다. 한 번에 최대 10t을 넣고 4시간 이상 섭씨 400도 넘게 가열하면 기체가 발생하는데, 촉매탑을 거치면서 액체로 응축돼 기름으로 변한다.

이 회사 신동호 대표는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10t을 가열하면 최대 8000ℓ의 열분해유를 얻을 수 있다”며 “약 80%까지 기름으로 재탄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반응로에 연결된 파이프 끝부분에서 투명한 액체들이 모이고 있었다. 신 대표는 “최초 가열할 때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이 분해되며 발생하는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대기오염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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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에코크리에이션 뉴에코원 공장 대표가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는 반응로 앞에서 열분해유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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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생산 과정에서 유독 가스를 발생하고, 분해가 잘 안 되는 특성 때문에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된다. 2019년 기준 플라스틱 생산 및 폐기로 인해 연간 9억t의 온실가스(500㎿ 석탄화력발전소 189개에서 배출되는 양)가 배출됐고, 2050년에는 약 30억t의 온실가스가 생겨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육지에서 버려져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바람과 조류의 영향을 받아 한곳에 모여 만든 한반도 7배 이상 크기의 쓰레기섬, 일명 ‘플라스틱 아일랜드’가 발견되기도 했다.



재활용 기술로 환경오염 해결



이 주범을 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량과 소비량을 줄이는 일이다. 하지만 생활용품과 포장재와 같은 플라스틱 활용도가 커지면서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등에 따르면 글로벌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지난 1950년 200만t 수준에서 2020년 4억6000만t으로 늘어났다. 2050년에는 연간 10억t이 배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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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생산과 소비를 줄일 수 없다면 이를 다시 활용하면 된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에 따르면 한국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1인당 연간 88㎏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다. 통계청은 2020년 기준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이 99.51㎏이라고 집계했다. 이 중 재활용률을 55.8%다. 여기에는 폐플라스틱을 단순 재사용하거나 이를 활용해 의류ㆍ신발과 같은 재활용 제품들을 만드는 물리적 재활용과 뉴에코원처럼 완전히 화학적으로 분해해 원료화하는 화학적 재활용이 있다. 사업성도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 시장은 2021년 455억 달러(약 56조원)에서 2026년 650억 달러(약 80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연간 9억t 넘는 온실가스 나와

바다에선 거대 ‘쓰레기섬’ 형성

재활용률은 50% 수준에 그쳐

3년 뒤엔 세계시장 80조원 규모

중소-대기업 상생모델로도 뽑혀

환경오염 줄이는 자원순환 주목

폐플라스틱에서 원사를 뽑아 섬유로 재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 물리적 재활용이다. 2008년 효성이 플라스틱병에서 뽑은 원사로 만든 친환경 폴리에스터 리젠을 선보였는데, 이를 이용해 신발ㆍ의류는 물론 자동차 내장재를 만든다. 효성에 따르면 리젠 1t당 30년산 소나무 약 279그루를 심거나 일회용 플라스틱컵 약 3만5000개를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발전시켜야 플라스틱 오염과 이로 인한 기후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정부와 기업들은 판단한다. SK이노베이션이 한국기후변화연구원(KRIC)과 공동개발한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열분해 정제유를 석유정제제품 원료로 사용하는 방법론’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1t을 열분해유로 사용할 경우 폐플라스틱을 소각하는 것보다 2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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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더불어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기름을 생산해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20년 폐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열분해유는 2020년 70만t에서 2030년엔 330만t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1개 국내 중소기업이 총 4100t의 열분해유를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폐플라스틱 1만t 정도가 활용됐다.



국내외 대기업들 사업 뛰어들어



중소기업 위주로 진행되던 열분해유 사업에 대기업들도 가세하면서 이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이 1차적으로 생산해 낸 플라스틱 열분해유에 대기업이 연구기술을 통해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의 경우 열분해유 후처리를 통한 고품질의 열분해 정제유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종혁 SK지오센트릭 그린사업개발담당은 “현재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는 열분해유는 화력발전소 원료나 난방유, 농기계류에 활용되고 있다”며 “불순물 저감 등 후처리 기술을 고도화하면 석유 화학공정에 바로 투입 가능한 정도의 품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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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에코크리에이션 뉴에코원 공장 대표가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생산되는 기름(열분해유)이 모이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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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울산 21만5000㎡(약 6만5000평) 부지에 1조7000억원을 들여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한데 모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에코원과 같은 중소기업 협력 등 방법을 통해 1차 생산된 열분해유를 본격적으로 석유화학의 원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외 대기업들도 열분해유를 활용하는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의 바스프(BASF)는 지난 2019년 콴타퓨얼(Quantafuel)과 파트너쉽을 통해 최소 4년간 열분해유 및 정제된 탄화수소 선매권을 가지며 열분해유 활용을 본격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사빅(SABIC)과 일본의 에바라(Ebara-Ube), 캐나다의 에너켐(Enerkem)은 열분해유 정제를 거친 납사(나프타) 생산을 목표로 열분해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폐플라스틱의 열분해 비중을 2021년 0.1%에서 2030년까지 1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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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애초 플라스틱 재활용사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역할분담’으로 결론 났다. 각종 사업 영역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다툼이 치열한 가운데 보기 드물게 합의점을 찾은 사례다. 기술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을 대기업이 주관하되 폐플라스틱 분류, 물리적 재활용 및 1차 열분해유를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대기업 중에는 롯데케미칼ㆍ삼양패키징ㆍ제이에코사이클ㆍLG화학ㆍSK에코플랜트ㆍSK지오센트릭이 참여했다. 신동호 대표는 “대기업이 정제 기술을 더 발전시킨다면 플라스틱 선별이나 1차 열분해유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역시 이익을 더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기름을 뽑아 쓸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남는 찌꺼기를 플라스틱 제품 원료로 재활용하는 것까지 가능해지면 환경오염이 거의 없는 자원순환 모델이 될 것”이라며 “자금력이 필요한 기술이라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태평양 플라스틱 섬, 한국의 16배 크기#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있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있다. 태평양의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육상에서 버려진 바다 쓰레기가 한곳에 모였다. 199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까지 가는 요트 대회에 참가한 찰스 무어가 횡단 중 발견했는데, 이후 ‘태평양 거대 쓰레기장(Great Pacific Garbage Patch, GPGP)’으로 불린다. 2018년 기준 넓이가 160만㎢로 남한의 16배에 이르렀으며 쓰레기양은 8만t에 달했다. 현재도 그 크기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관리처(NOAA)에 따르면 이 섬의 90% 이상이 플라스틱 제품이다.

2017년 광고 제작자인 마이클 휴와 달 데반스 드 알레인다가 유엔에 이 태평양 쓰레기섬을 국가로 인정해달라고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나라 이름을 ‘쓰레기섬(The Trash Isle)’, 화폐 단위는 쓰레기 잔해를 의미하는 데브리(debris)라 하고 여권과 국기도 디자인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이 섬의 1호 국민이다. 현재 약 20만 명이 국민 신청을 하면서 쓰레기섬 국가 청원에 동참하고 있다. 지구의 대양에는 GPGP를 포함해 5개의 거대한 쓰레기섬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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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섬 지폐. [DAL&MIK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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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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