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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영상]‘9구의 시신’이 눈앞에…‘악동’ 카텔란, 리움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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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미술계 ‘사기꾼’·‘협잡꾼’·‘악동’으로 악명

특유의 블랙유머로 예술·사회·정치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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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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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9구의 조각이 바닥에 놓였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해석되는 바는 명확하다. 죽은이들을 흰 천으로 감싼 모습, 평안하지 않다. 천 아래 놓인 이들은 하나같이 발버둥치고 있다. 깔린 카페트는 피보다도 붉다. 이곳은 2023년의 리움. 이태원과 나란한 한남동이다.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이 1월 31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을 극사실적 조각으로 선보인 ‘아홉 번째 시간’,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을 꿇은 히틀러 ‘그’,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이나 그 가격은 12만 달러(약 1억4000만원)에 달하는 ‘코미디언’ 등 그의 대표작과 화제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각, 설치, 벽화 등 총 38점이다.

카텔란 “작가의 말을 듣지 말라”…작품에 각자의 현실이 '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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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경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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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은 대중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절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일갈한다. 작품이 선보이는 시기와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쉽게 말해 ‘해석의 다양성’ 그 자체가 현대미술의 특징임을 항변하는 듯 하다.

9구의 시신을 대리석으로 소화한 그의 작품 ‘모두’(2007)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태원의 이웃 동네에서, 길거리가 아닌 미술관이라는 맥락 속에서 불과 석 달 전에 일어났던 참사 장면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 이 우아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날카롭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벽에 머리를 박은 말(무제·2007)처럼 행동해왔던 지난 시간 마저도 그의 비판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려 2007년작이다. 이태원 참사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우리는 그 어처구니 없는 여린 죽음을 떠올리고, 옴짝달싹 못하는 죄책감이 덩치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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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을 작게 제작한 '무제(2018)' 너머로 운석에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1999)이 보인다. [헤럴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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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사기꾼·협잡꾼 vs 세기의 기발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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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2만달러에 팔리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가 탄생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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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은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간 그의 행적을 보면 이같은 별명은 순화한 표현에 가깝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카텔란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광고 에이전시에 대여한다.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Working is a bad job)’이라는 캡션만 붙여놓은 공간엔 상업광고가 걸렸다. 뒤샹의 후예로 ‘레디메이드’를 차용한 기발함이라는 평과 어처구니 없는 기행이라는 평이 팽팽히 갈렸다.

지난 1996년 네델란드에선 도저히 전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근처의 갤러리에서 전시되던 작품을 훔쳐와 포장 한 채로 전시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빌어먹을 레디메이드(Another Fucking Readymade)’다. 1999년엔 갤러리스트인 마시모 데 카를로를 갤러리 벽에 덕테이프로 붙여놨다. ‘완벽한 하루’라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마시모 데 카를로는 결국 기절해 병원에 실려간 일화도 있다.

이쯤 되면 기존 미술사에서 유명한 작가의 작업 아이디어를 차용한 작품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보이드(Void)는 작가 본인의 초상으로 지금까지 그가 작업했던 모든 작품들이 다 들어있다. 캔버스를 칼로 찢어 평면인 회화에 공간감을 불어넣은 루치오 폰타나의 작업은 쾌걸 조로의 ‘Z’가 조롱한다. 작가는 이 두 작품을 각각 ‘로비 아트’, ‘경매 아트’라고 부른다.

‘미술계의 침입자’가 만든 작품…유명한 '이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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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전시장을 누비는 아이 [헤럴드 DB]


자전거를 타고 전시장을 누비는 아이나 높은 곳에 앉아 북소리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아이 모두 카텔란의 또 다른 자아다. ‘철듦’이라는 사회화를 거부하는 예술가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의 현실을 뒤집어보고 또 꿰뚫어본다. 벽을 바라본 책상에 앉은 아이(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는 학교라는 지루함에 스스로의 손에 연필을 꽂아 학대한다. 자학과도 같은 작품 앞에서 학원 뺑뺑이를 도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겹쳐진다.

특유의 사르카즘(Sarcasm, 풍자)은 리움 로비를 지하철역의 대합실로 바꿔놨다. 단색화 대표작가로 꼽히는 이우환의 작업이 걸려있던 벽엔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Working is a bad job)’의 시리즈로 광고 2건을 걸었다. 코오롱스포츠와 엔씨소프트 광고다. 기둥엔 코르크 마개를 물고 있는 인물들의 초상이 크게 프린트됐고, 그 앞에는 노숙자로 분한 마네킹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다.

뿐만이랴, 전시장 곳곳엔 박제된 비둘기가 백 여 마리 점령했다. 베니스를 찾는 관람객들을 비둘기떼로 비유하며 ‘투어리스트’로 명했던 작품이 이번엔 ‘유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유령처럼 존재감이 없지만 늘 옆에 있는 존재들이다. 수백쌍의 비둘기 눈은 우리 생활권 곳곳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처럼도 보인다. 사실 누군가는 늘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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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경 ⓒ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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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 1997 [헤럴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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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의 로비는 대형 역사의 대합실로 바뀌었다. [헤럴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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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계의 침입자다. 작가가 아니다. 작가 일을 할 뿐”. 지독히 냉소적인 그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미술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왜 그의 바나나가 1억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지, 왜 이 작가가 유명한지 전시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무료, 7월 16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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