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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빅테크도 탐내는 '꿈의 암호기술'… 한국이 게임체인저 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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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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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처럼 한국의 보안 역량이 세계로 수출되는 전기를 마련하겠다."(천정희 크립토랩 대표)

크립토랩을 이끌고 있는 천정희 대표(서울대 교수)는 '동형암호'로 불리는 미래 보안 기술이 삼성의 반도체 기술처럼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름부터 생소한 동형암호는 크립토랩을 필두로 IBM, ZAMA, 마이크로소프트(MS), 듀얼리티 테크놀로지 등 약 7개사가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먼저 프라이빗 인공지능(AI)시장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최근 화제를 모은 챗GPT처럼 공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고도화하는 생성형 AI와 달리, 프라이빗 AI는 민감한 개인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초개인화한 서비스를 구현하게 된다. 문제는 공개된 데이터가 아닌 개인정보를 결합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고난도 수준의 암호 기술이 함께 적용돼야 한다.

영국 유수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10월 개인정보를 획기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암호기술 4가지(동형암호, 영지식증명, 다자간연산, 차등정보보호)를 소개했다. 이 중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로 자유자재로 결합할 수 있는 동형암호가 가장 선도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상용화 1순위의 차세대 보안기술로 동형암호를 꼽았을 정도다. 동형암호는 양자안전암호(PQC)를 기반으로 하기에 슈퍼 컴퓨터로도 암호키를 뚫을 수 없고, 설사 만에 하나 뚫었다고 하더라도 해커가 암호화된 정보만 탈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

내수형 한국 보안산업을 글로벌 보안업체들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보안업계에서는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취급하는 데이터 프라이버시(Data Privacy)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다국적 빅테크의 거대한 자본력에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비록 밀렸지만, G5로 산업 위상이 올라가기 위해선 개인화된 AI와 데이터 프라이버시라는 미래 시장은 한국 기술로 꼭 선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 역시 기존의 미온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게 보안업계의 의견이다.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츠(Fortune Business Insights)는 개인정보 보호 기술을 뜻하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시장 규모가 지난해 약 23억달러에서 2029년 약 258억달러(약 31조원)까지 10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40%대에 달하는데, 2029년 기준 세계 사이버보안시장(3763억달러)의 무려 7%까지 데이터 프라이버시 분야가 차지하게 된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동형암호의 주요 사용처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있는 금융·의료 분야로 전망된다.

산업계에서는 다국적 금융사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카드 사기' 방지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닐슨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카드번호 도난과 이를 통한 불법 인출이 무려 32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했다. 만일 카드 소유주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면, 금융회사는 이를 모아 이상 거래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 통신사에서 나오는 실시간 위치 데이터와 카드 결제 데이터를 동형암호를 통해 합친다면, 소유주의 위치에서 벗어난 곳에서 카드가 결제될 경우 이를 사전에 막고 경고 알림음으로 카드 주인에게 알릴 수 있다. 동형암호를 통해 카드 사기의 1%만 막을 수 있다면, 금융사는 적은 비용으로 연간 3000억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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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데이터 역시 동형암호의 주 사용처가 될 수 있다. 국내 동형암호 스타트업 크립토랩은 유전자 DNA를 취급하는 의료 기업 마크로젠과 협업해 DNA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현재 PoC(기술검증)가 거의 막바지로 진행된 상황이다.

향후 데이터 보안 안전성이 더욱 입증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있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신약 개발을 촉진할 수도 있다.

한편 이 시장이 커지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동형암호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보안, 문서 보안, 네트워크 보안 등 전 분야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이 빠졌다는 게 보안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상장 보안업체 A사 대표는 "국내 보안산업이 현재 4조원대인데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커져야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면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한 규모의 경제·수출 등을 꾀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정부 및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국내 보안 솔루션을 도입해줘야 하는데, 민간 기업에만 정보보호 공시를 통해 압박할 뿐 공공기관은 의외로 도입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박춘식 아주대 교수는 "기술력이나 인지도가 부족한 국내 보안업체가 수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모태펀드를 활용한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어

동형암호 :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로 처리·사용하게 해주는 차세대 보안기법. 데이터 해독을 거쳐 연산 결과를 얻는 암호 체계가 동형암호 방식으로 바뀌면 데이터 유출과 해킹 피해 등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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