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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할머니가 엄마 됐다…'강제출국 위기' 중국인 손녀 입양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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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이어 서울가정법원도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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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가 키울 수 없는 자녀를 할머니가 입양하도록 법원이 허가했다. 202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처음으로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자, 이 취지를 따른 법원 판결이 이어지는 것이다. 30일 법률구조공단은 지난해 12월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 최호식)가 중국 국적 초등학생 A양 할머니의 입양 허가 신청을 인용했다고 밝혔다.

A양은 다섯 살이던 2014년 할머니를 따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앞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에 살고 있던 할머니가 A양을 키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식에 중국에 가 A양을 데리고 온 것이다. 모두 중국 국적인 A양의 아빠와 엄마는 몇 년째 행방불명이 되거나 사업상 큰 어려움을 겪어 A양은 혼자 남겨질 위기였다.

할머니는 중국 국적인 A양이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수소문 끝에 A양의 엄마가 재외동포 자격으로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엄마를 찾아내 A양이 방문동거자격으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게 조치했다. 다만 A양의 엄마는 A양 양육을 포기해 별다른 교류 없이 9년 내내 할머니가 A양을 키웠다.

그러나 2020년 A양의 엄마가 재혼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A양은 한국 체류 자격을 잃게 됐다. 강제 출국 위기에 처하자 할머니는 A양을 친딸로 입양하기로 하고 법원에 입양허가를 신청했다. 민법상 미성년자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2021년 7월 1심 재판부는 “입양을 허가하면 할머니가 어머니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 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며 할머니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몇 달 뒤 12월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처음으로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을 허가하면서 A양 할머니에게도 길이 열렸다. 고등학생 때 아이를 낳은 엄마가 자신의 부모에게 아이를 두고 떠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이를 키워온 사건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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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2월 23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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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원합의체는 “제도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전통적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이 혼란을 초래한다고 막연히 추단해 입양을 불허한다면 가족 구성에 관한 당사자 판단과 선택권을 무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1년 비준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입양 사건에서는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작용한 영향도 컸다. 전원합의체는 “친부모가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경우 자녀에게 안정된 양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동 복리에 부합한다”며 “친부모가 언젠가 자녀를 키우려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만으로 입양을 불허하는 것은 자녀 복리에 반한다”고 했다. “조선 시대에도 혈족을 입양하거나 외손자를 입양하는 예가 있어 우리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된다고 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등 그 밖의 다른 혜택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A양 할머니가 항고한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부도 판결문에 이 전원합의체 법리를 인용해 입양을 허가했다. ▶A양 할머니가 실제 부모 역할을 하며 안정적으로 양육해온 점 ▶입양이 안 되면 A양은 돌봐줄 사람이 전혀 없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이 입양으로 가족 내부 질서나 친족 관계에 혼란이 초래되지는 않는 점 등을 들었다. A양이나 친모 역시 할머니의 입양에 동의한 상태이기도 했다.

A양 할머니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류은주 변호사는 “입양 아동의 복리를 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라며 “A양이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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