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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임신 4개월, 제 장기 팝니다”…미얀마 쿠데타 2년, 붕괴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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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체제 굳히기에만 골몰

시민들 가난 속 극단적 선택 내몰려


한겨레

2021년 2월9일(현지시각)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경찰이 경고 사격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해산하려 하고 있다. 만달레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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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게 먼저일까. 미얀마 신군부의 쿠데타 굳히기가 먼저일까. 새달 1일 쿠데타 2년을 맞는 미얀마의 미래가 기로에 서 있다. 쿠데타 직후 전개됐던 시민 불복종 운동과 민주 세력의 저항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답보하는 가운데, 미얀마 군부는 폭력적인 유혈 진압과 함께 올해 안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하며 쿠데타 이후 질서를 굳히면서 현 통치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22년 한해 동안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무장세력(EAO), 시민방위군(PDF)의 저항이 이어지자 군부의 억압도 극에 치달았다. 군부는 무장 저항세력뿐 아니라 민간인도 공격하며 국제사회의 큰 비판을 받았다. 학교와 종교시설이 공습 대상이 되고, 저항이 심한 몇몇 지역에선 민간인 거주 지역에 일부러 불을 질러 주민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세계 인권의 날’이었던 지난해 12월10일엔 저항세력의 공격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군부는 26개 마을에 불을 질렀다고 민주진영 매체 <이라와디>는 전했다. 미얀마의 인권 단체 ‘정치범지원협회’는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전역에서 2500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숨졌다는 집계 결과를 내놓고 있다.

2021년 2월1일 쿠데타가 발발한 직후엔 미얀마 공무원과 의료진 등이 군부에 저항해 자발적으로 업무를 거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초기엔 시민 10만명이 최대 도시 양곤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군부는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공습 등 억압이 강해지고 쿠데타 이후 미얀마 경제가 파탄에 빠지면서 많은 이들이 당장 하루하루의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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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이 지난해 7월 낸 보고서를 보면 미얀마 인구의 40%가 빈곤선 아래서 살아간다. 지난해 2월 말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입품과 소비재의 가격이 오르고 정세 불안정이 계속되면서 경제가 최악의 불황에 빠졌다. 메리엄 셔먼 세계은행 미얀마 담당 국장은 “미얀마는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엄혹한 경제 수축을 경험했고, 2022년 예상 경제성장률 역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고 짚었다. 특히 군부가 지난 10년간 진행된 미얀마의 경제 개방 노선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며,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세계은행은 “당국이 자원 할당에 통제력을 가지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러한 경향은 미얀마의 성장 잠재력을 장기적으로 제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미얀마 현지 매체 <프런티어 미얀마>는 지난 17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가난과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신장을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신 4개월째임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장기 매매를 시도하고 있는 마 녜인 녜인 나잉은 “월급은 한달에 50달러(약 6만2천원)인데 빚이 700달러(약 86만원)”라며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신장을 파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마약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재배가 늘고 있고, 군부나 지역 무장세력도 세금을 걷기 위해 이를 묵인한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런 가운데 군부는 올해 중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 4일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새달 1일까지 연장된 국가비상사태 이후 총선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헌법에 따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며 “민주적 기준에 따라 승리한 정당에 권력을 넘기는 추가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는 국가비상사태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치러져야 해, 8월 이전엔 총선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부는 이미 유권자 명부 작성을 위한 인구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선거를 앞두고 군부 정당인 연합연대개발당(USDP)이 친군부 정당이나 일부 소수민족무장세력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군부가 2년 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든 가장 큰 명분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족민주동맹(NLD)이 대승을 거둔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것이었다. 군부는 뚜렷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가 짜놓은 판에서 총선이 진행되면 쿠데타 이후 상황이 정당성을 얻고 굳어질 수 있다. 나아가 지난해 말 민주세력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 대한 재판도 일단락됐다. 수치 고문은 2년 전 쿠데타 직후 부패와 부정선거 등의 혐의로 총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78살 고령이기 때문에 “사실상 종신형”이란 평가가 나온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총선 이후 민 스웨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권력을 넘기고 ‘꼭두각시 정부’를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얀마 현행 헌법상 의회의 25%는 군부가 지명하도록 되어 있어 군부 정당(연합연대개발당)이 총선에서 26%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 다수당이 된다. 서부 라카인 지역 정치인 페 탄은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와 한 인터뷰에서 “선거는 군정이 정치적 곤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며 “군정은 민족민주동맹 같은 주요 라이벌의 손발을 묶어 그들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국민통합정부 등 민주세력은 최근 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군부 사무소를 주요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군부가 이들의 반격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선거 진행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조 민 툰 군부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 미얀마어판 인터뷰에서 “유권자 등록 문제와 저항 단체들의 전복 활동이 급증하면서 2023년 선거 실시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세력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는 것처럼 미얀마 민주세력을 적극 지원해 민주화 동력이 이어지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정권을 공식 인정하진 않지만, 원론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러왔다. 유엔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지난해 12월에야 미얀마 군부의 폭력 중단을 요구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마저도 중·러의 반대로 안보리가 평화안전 유지를 위한 조처에 나설 수 있다는 유엔 헌장의 조항은 언급하지 못했다. 다만, 미국이 지난해 말 미얀마 민주세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버마 법’(Burma Act)이 포함된 2023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킨 것은 고무적이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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