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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이' 김현주, 숨어있던 강렬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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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정이 김현주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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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배우 김현주의 새로운 얼굴은 강렬했다. 데뷔 26년 차에 SF물과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며 묵혀뒀던 갈증을 풀어냈다. "변화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한계점에 부딪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이'는 저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김현주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셸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작품이다. SF물이란 큰 틀 아래 모성애라는 신파적인 요소를 녹여냈다.

김현주는 극 중 전투용병 윤정이와 A.I 복제 용병 정이 역을 연기했다. 배우 故강수연은 A.I 개발 연구소팀장이자 정이의 딸 윤서현 역을 맡아 모녀 호흡을 맞췄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김현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현주 역시 연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이'라는 낯선 장르, 하기 힘든 발상과 구상을 하지 않냐. 연상호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과 신뢰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현주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회상하며 "관계적으로 봤을 때 제가 당연히 딸 역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뒤집힌 모녀관계가 너무 신선했다"고 얘기했다.

이어 "'정이' 룩테스트를 때 사진을 찍는데, '아 정이가 나한테 오려나보다'란 느낌을 받았다. 연 감독님도 아직 잡히지 않은 정이의 비주얼적인 면이 있었는데, 저의 룩테스트를 보고 완성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밝혔다.

김현주는 정이의 강인함을 보여주고자 몸을 키우며 체력을 길렀다. 데뷔 이래 처음 도전하는 와이어, 총액션도 현란하게 소화했다. 김현주는 부담감보다 흥미진진했다며 "총 들고 있는 견착 연습도 열심히 했다. 실제로 장난감 총 사서 집에서 혼자 쇼파에서 연습을 해봤다. 그런 과정들이 마냥 신났다"고 웃었다.

고난도 액션뿐만 아니라 CG연기도 오롯이 자신이 맡아 해냈다고 한다. 특히 상반신만 있는 정이가 수많은 실험을 받는 장면에선 마치 전원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듯한 연기를 보여줬다. 짧은 순간에 멈췄다가, 화를 냈다가, 고통에 울부짖는 장면들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에 김현주는 "그냥 하려면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감정의 개연성을 찾으며 연기했다. 물속에서 굉장히 오래 참고 있다가 버튼을 누르면 깨어나는 느낌, 총 맞은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깨어나거나, 이상한 표정에서 멈추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차츰 캐릭터에 녹아든 김현주는 정이가 짠한 존재로 다가왔다고 한다. 김현주는 "정이를 봤을 때 기억엔 없지만 무한하게 반복된다는 점이 굉장히 짠했다. 기억에선 지워졌지만, 매번 반복되는 감정이 고단할 것 같았다. 의식되지 않는 고단함이 쌓여있을 것 같아 짠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극 중 딸로 호흡을 맞춘 강수연을 언급했다. 김현주는 "강수연 선배가 극 중 정이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눈물 나려고 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저한테 투영하신 것 아니지만, 선배도 짠함을 느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현주와 모녀 호흡을 맞춘 故강수연.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강수연은 실제 김현주에게도 남다른 존재였다. 김현주는 "강수연 이름 석자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있다. 만나 뵐 수 있단 생각도 못했다. 저는 영화를 많이 안 하다 보니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없어 지나가도 만날 수 없던 전설적인 배우였다. 강수연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같이 눈을 보며 연기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지만 실제로 만나니 너무 좋았다. 어른 같고 기댈 수 있는 선배였다. 저도 연차가 많아 다른 후배들한테 늘 어른스러워해야 한단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정이'에선 강수연 선배 덕분에 부담감이 소화됐고, 상담도 받을 수 있었다. 현장에선 함께 연기하는 동료배우였다"고 그리워했다.

동시에 아쉬움도 내비쳤다. 김현주는 "극장에서 '정이' 첫 시사회를 한 적이 있다.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선배를 보니 너무 멋있더라. 왜 선배님은 작품을 많이 안 하셨지 싶었다. 너무 좋은 배우를 잃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정이'를 선택하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싶었다. 그 당시엔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누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연상호 감독, 김현주, 강수연이란 조합으로 '정이'는 한국형 SF물의 첫 발을 내디뎠다. 글로벌 성적도 호성적을 기록했다.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다만, 글로벌 성적과 별개로 관객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는 SF와 신파적 클리셰 조합에 혹평을 쏟기도 했다.

김현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각자가 다른 마음과 기대로 영화를 봐주시는 것뿐이다. 만족과 불만족의 간극을 줄여 대부분이 좋아하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대중문화종사자의 입장이지만 다 만족할 순 없지 않냐. 충분히 그런 시선들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시도 자체에 있어 반은 성공이라는 김현주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는 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나올 작품에 있어 레퍼런스가 될 수 있고, 비관적으로만 느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평들도 발전 계기가 된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김현주는 "드라마 쪽을 많이 하다 보니 아무래도 변화를 준다 하더라도 변화가 쉽지 않더라. 시도를 하려고 하지만 한계점에 부딪히는 시기가 있었다. '정이'는 저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공교롭게도 '지옥'에 이어 '정이' '선산'까지 연달아 연상호 감독과 함께하고 있는 김현주다. 그는 "연 감독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는 마음, 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매력인 것 같다. 팬의 입장에서 앞으로도 이런 새로운 세계관과 작품들은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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