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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부산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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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좀비’전

‘이우환과 그 친구들’ 4번째 프로젝트

보험료만 958억원 ...대규모 회고전

회화·설치작품·영상까지 약 170여점

암울한 미래 시각화 ‘좀비’ 조각 눈길

귀여움에 감춰진 두려움·괴기·허무...

최근 日전통문화 종교·철학으로 확대

헤럴드경제

일본 팝아트로 세계적 현대미술작가 거장 반열에 올라선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특유의 포즈를 취했다. 쓰고 있는 모자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 ‘쿠라게보’다. 작가는 “다른 작가와 차별화 하고 싶어서 모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보니까 쿠사마 야요이도 루이비통 협업에서 호박을 쓰고 나타났더라. 내가 영향력이 있긴 있나보다”하고 농담을 했다. [헤럴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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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희끗한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장발의 그가 나타났다. 머리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 분홍 해파리인 ‘쿠라게보’ 모자를 썼다. 체크무늬가 도드라진 노란 코트에 힙합 스타일의 청바지, 운동화를 신은 채 카메라를 향해 장난스런 포즈를 잡는다. 기괴한 카와이(귀여움)가 넘치는 이 남자는 카이카이키키(기기괴괴·奇奇怪怪) 월드의 수장, 팝아트로 세계적 스타가 된 무라카미 다카시(61)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규모 회고전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술관의 오랜 프로젝트인 ‘이우환과 그 친구들’의 네 번째 전시로, 이우환 작가가 무라카미 다카시를 직접 초대했다. 이우환과 장르는 다르지만 현대미술사의 중심에서 예술관을 공유하는 작가들을 함께 조명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앞서 안소니 곰리, 빌 비올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초대된 바 있다.

다카시는 27일 본 개막에 하루 앞서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현대 미술계에서 굉장히 존경하는 작가인 이우환 선생님의 초대로 왔다”며 “초대 받은 것이 굉장한 영광이어서 바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가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 것은 지난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 이후 10년 만이다.

대규모 회고전답게 전시는 1988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작가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른다. 전시 보험가액만 958억원이다. 회화, 대형 작품, 설치 및 영상까지 약 170여점이 나왔다. ‘다카시’하면 떠오르는 주요 작품들이 전시장을 점령했다. 도라에몽과 소닉이미지를 더해 탄생한 도브(Mr. DOB), 코스모스 꽃을 캐릭터화 한 꽃시리즈, 1990년대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히로폰시리즈 등이 쉴 틈 없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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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 2022. 부산시립미술관 2023 무라카미좀비전 전시전경. [헤럴드DB]


오타쿠 문화에서 시작한 슈퍼플랫(Superflat,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계급과 취향도 사라져 평평해진 현대사회)의 세계다. 한편 귀엽고(카와이) 또 기괴한(그로테크스) 작업들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마침내 ‘무라카미 좀비’가 있는 덧없음(모노노아와레) 섹션에 도달한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때 작업 세계가 새로운 페이스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3년 전 시작한 팬데믹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의 경험은 작가에게 예술의 역할과 효용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던졌다. 꾸준히 제기되는 환경오염에 더해 20대부터 고민해온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우려는 암울한 미래를 시각화하기 충분했다.

전시 제목과 동일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는 극적 재난 상황에서 좀비가 되어버린 본인과 반려견 조각이다. 흘러내리는 내장과 녹아버린 근육에 드러나는 뼈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두려움마저 던져준다. “병, 재해, 전쟁 등 인간에겐 다양한 공포가 있다. 그것이 실체화 한 것이 괴물과 악마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이런 공포가 있었지 하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

최근 작업은 일본 전통과 종교, 철학으로 확대된다.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2013)은 불교의 500 나한도에서 착안했다. 입을 다문 푸른 도깨비와 입을 벌린 붉은 도깨비는 사찰의 입구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상의 형상과 결합한 모양새다. ‘아’하고 벌린 입은 삶과 시작을, ‘음’ 하고 다문 입은 죽음과 마감을 뜻한다. 죽음과 삶을 계속 반복하는 윤회의 고리는 캔버스를 가득 메운 귀여운 해골(선혈을 바쳐, 2019)로 표현되지만,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업보가 끝나면 ‘아미타’와 만날 수 있다.(아미타 내영도, 2016)

죽음마저도 평온한 해탈의 경지에서, 예술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이우환 공간에서 만나는 작가의 마지막 섹션 ‘원상(円相)’에서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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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 2013, 부산시립미술관 2023 무라카미좀비전 전시전경. [헤럴드DB]


한 획으로 그린 동그라미라는 뜻의 원상은 불교 선종의 개념으로 그릴 당시 마음과 정신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선종의 공허함, 통일성, 무한함의 개념을 담은 상징을 다카시는 붓이 아닌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려냈다. 바탕엔 윤회를 뜻하는 검은 해골이 깔렸다.

미술관 측은 “원상시리즈는 이우환의 작품과 형식적으로 유사하다”며 “캔버스 위에 선 혹은 점이라는 최소한의 표현을 추구하는 이우환의 작품과 단숨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작가의 신체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우환 작가는 다카시를 초대하며 손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를 통해 “님의 작품은 얼른보아 경쾌하고 유모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중략) 언제나 넘치는 패기와 부정과 긍정 반전역전의 드라마성에 놀랍니다.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에 힘찬 예술가의 외침이 필요합니다”고 부탁했다.

귀여움 아래 감춰진 두려움과 기괴함, 그리고 허무함은 하나미(花見)의 장엄함을 찬양하는 일본의 미의식을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는 말한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어린이도, 그 누구나 쉽게 와서 즐기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무료이나 기간이 짧다. 3월 12일까지.

부산=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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