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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K리그의 낭보…'27년 베테랑'의 단장 취임이 말하는 것은 [김현기의 스포츠정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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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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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새해 첫 달 K리그에 낭보가 전해졌다.

선수로 출발, 한 구단에서 27년간 몸 담아 산전수전 다 겪은 행정가가 단장직에 오른 것이다. 이달 초 취임한 이종하 포항 스틸러스 단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현장을 누비는 선수를 비롯해 프런트, 미디어 등 어지간한 K리그 관계자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선수단을 총괄하는 단장에 오르면서 K리그에도 모처럼 선수 출신 행정가, 축구단 밑바닥부터 커나간 프런트가 단장으로 올라서는 사례를 만들었다.

축구단에서 오랜 기간 일한 프런트가 단장되는 게 뭐가 그렇게 경사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구단에서 잔뼈가 굵고 K리그 패러다임을 훤히 아는 인물이 단장까지 오르는 게 어느 새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기업구단은 모기업에서 일하던 임원이, 시도민구단에선 시장이나 도지사의 선거 공신 혹은 은퇴를 앞둔 고위공무원이 단장 아니면 그 위의 대표이사직을 맡는 게 지금 K리그에서 일반회된지 오래다.

그나마 대구FC 조광래 현 대표이사, 강원FC 이영표 전 대표이사, 김병지 현 대표이사, 수원FC 김호곤 전 단장, 최순호 현 단장 등 일부 시도민구단들이 명망과 네트워크를 갖춘 축구인을 구단 책임자로 스카우트, 활용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해당 구단에 임원으로 곧장 취임한 경우다.

상당수의 구단들에서 직원은 그냥 직원으로 끝나기 일쑤다. 또 이는 야구나 농구, 배구 등 다른 프로종목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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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장의 승진이 프로스포츠계에 신선한 이유다.

얼마 전 통화한 이 단장 역시 "단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며 "축구계 축하 전화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시인하는 것을 보면 그의 단장직 취임이 이 바닥에서 얼마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는지 잘 설명이 된다.

한편으론 지난해 수해 뒤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겨 조업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악재, 이에 따른 정신 없는 회사 여건에서도 축구단에서 오래 헌신한 인물의 능력을 잘 알아보고 인사를 낸 포스코그룹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축구를 했고, 축구단에 오래 있었다고 꼭 단장이 되리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모기업 사정을 잘 알고, 100여명을 넘지 않는 축구단보다 훨씬 더 큰 조직에서 일해 본 임원들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축구단에서 청춘을 바치고 오랜 노하우를 터득해 대표이사 혹은 단장으로 충분히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들이 거의 대다수 말년에 한직으로 가거나 마지막 꽃을 피우지 못하고 퇴직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한 없이 안타까운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따로 없다.

그런데 포스코그룹이 예상을 깨고 이 단장을 승진 발령냈으니 포항 구단은 물론이고, K리그 각 구단에서 일하는 프런트들의 동기부여를 충만하게 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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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장 취임은 2020년대 들어 기업 경영 대세로 자리잡은 'ESG 경영'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ESG 경영'이 어려운 게 아니다. 환경을 뜻하는 E(Enviornment)와 사회공헌을 의미하는 S(Social)는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 못 할 게 없는 화두다. 축구단도 최근 ESG 테마를 들고 나와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고, 사회공헌에 박차를 구단들이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조직 내부의 지배구조를 잘 정비해 실력 있는 직원들이 합당한 대우와 직책을 받고, 낙하산 인사를 배제해 구성원 사기를 떨어트리지 않는 G(Governance), 바로 거버넌스다.

그런 면에서 이 단장 취임은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축구단이 ESG 경영을 실천한 사례로 꼽고 싶다.

조직이론과 리더십을 전공으로 하는 윤정구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해 8월 "ESG 중 자기조직력(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결정하는 것은 S나 E가 아니라 G"라면서 "거버넌스에 대한 이런 노력 없이 E나 S에 치중하는 회사는 ESG를 내세워 눈속임을 하려는 'ESG 워싱'"이라고 강조했다.

포항 구단의 이 단장 선임 만큼은,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져 구단의 자기조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동력인 셈이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이 단장이 순항을 거듭해서 포항에서 프런트 출신 또 다른 단장, 그리고 다른 구단에서도 이 단장과 같은 낭보가 이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울러 각 구단 수뇌부가 현장에서 고생하는 프런트들의 고생과 실력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진=포항 구단, 한국프로축구연맹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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