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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NGO 발언대] ‘적과 우리’라는 게으르고 해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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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을 업으로 삼는 친구들과 만났다. 연초부터 만나 나라 걱정하는 꼴이 퍽 우습고 구태의연하다. 다들 정부에 대한 분노 한 줌씩 쥐고 사는 이들이라 오가는 말이 사납다.

경향신문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하지만 한 친구의 말이 날선 말들을 주춤하게 한다. 그는 대뜸 2016년 가을의 상황이 되더라도 광장에 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린 매주 광장에서 만나 안부를 묻곤 했다. 의아했지만 짐작건대 열광 뒤 찾아오는 환멸 탓일까. 전능해 보였던 광장의 힘이 결과적으론 전무했기 때문일까. 응집된 시민의 힘이 제도정치로 수렴되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증발되어버린 탓일까. 하지만 그는 편을 나눠 싸우고 있는 시민들 그리고 내전 중인 사회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의 광장은 다수의 다양한 열망, 어떤 변혁의 낱알이 배태된 장소로서 긍정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전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당시 광장은 개혁으로의 길과 내전으로의 길의 갈림길이었다. 하지만 광장의 힘은 제도를 세우고 어떤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적을 제거하고 청산하는 적대의 정치에 더 익숙했다. 광장의 과실로 집권한 정치세력은 법과 제도를 사적으로 전유하기도 했다.

결국 극단화된 사회, 이항대립의 사실만 용인되는 사회,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라 적과 편으로 갈라지는 사회, 그리하여 갈가리 찢긴 내전 중인 사회가 남겨졌다.

언젠가부터 토요일 오후 서울시청과 광화문 광장 일대는 데이트하는 이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정부와 여당을 두둔하며 야당을 공격하는 이들, 반대로 야당을 비호하며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이들이 그 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두 기득권 세력 간 대리전쟁이지만 그것이 우리 정치와 사회의 전부인 양 거울 쌍을 이루고 있다. 이런 식의 선과 악의 대결은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를 후퇴시킬 뿐이다.

최근 정부의 퇴행적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악과 적으로 삼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국가정보원 딱지를 등에 붙인 요원들이 카메라 앞을 활보한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도처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적대가 만연한 상황에서 대란대치는 사회를 허물고 서로를 더욱더 악마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구분 짓는 싸움에 익숙한 시민운동은 이 질문을 앞에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회를 조각내는 싸움이 아니라 이어붙이는 싸움은 어떻게 가능할지 말이다.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가 양극단의 자장에 포섭되지 않도록 적대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공간이 싸우는 시민들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적대에 맞서는 적대로는 적대를 끝낼 수 없다. ‘적과 우리’라는 선명하고 아늑한 싸움은 게으르고 해롭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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