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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침을 열며]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 말고도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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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정당의 준말로, 정당 정치에서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정당이다. 여당과 대립되는 말로, 여당의 정책이나 시책 등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하여 여당의 잘못된 독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인 폐해를 막는다.’ 야당이 무엇인지에 대한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설명 중 일부분이다.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할 정당은 전체 의석의 절반이 넘는 169석을 보유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다.

경향신문

박영환 정치부장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현 정부 출범 후 한국 사회는 퇴행하고 있다. 노사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친기업 반노조 정책이 노골화되고 있다. 파업은 불법화하고 협박과 응징으로만 대응한다. 주 69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도 추진된다. 시장주의 교육 정책은 위험천만하다. 교육당국은 상품으로서 인적 자본 확보에만 관심이 있고 공교육 강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가정보원이 간첩단 사건이라며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정국도 예상된다.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여당 전당대회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검사 출신 인사들이 주요 권력기관에 포진했다. 민주화 이전 군사독재와 비슷한 검사독재라는 말까지 나온다. 1990년대도 아닌 198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한국갤럽의 1월 셋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잘 못한다는 평가가 55%로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정당 지지율에서는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가 37%로 민주당 지지 32%보다 높았다. 서울에서는 국민의힘 40%, 민주당 32%로 격차가 더 컸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있지만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무당층 25%는 여야 골수 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의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보여준다.

민주당 지지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로부터 이 대표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다. 지난 10일 이 대표의 첫 검찰 출석 당시 4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엄호했다. 28일 두 번째 출석 때도 이 대표는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10여명의 의원들이 현장을 찾았다. 당의 주요 회의는 검찰의 이 대표 수사에 대한 비판의 장이 됐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도 압박한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드라마 <환혼>)라는 생각인 듯하지만 틀렸다. 시민들이 보기에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야당 의원 수십명이 이 대표를 호위하는 모습은 조폭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떠오르게 할 뿐이다. YTN의 지난 25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개인 비리 수사라는 응답이 53%로 야당 탄압용 정치 수사라는 답변 33.8%보다 많았다.

이재명 지키기에 집중하는 민주당은 여권에 ‘방탄’이란 공격 빌미를 줄 뿐이다. 여당과 정부는 민주당이 뭘 해도 방탄이라고 몰아세운다. 이태원 참사를 비판해도,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을 제안해도, 법안 심사를 위해 국회를 열자고 해도, 심지어 가스값 폭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해도 이 대표 방탄용이라고 공격한다. 검찰의 편파적 수사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민생 정책 제안도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메신저에 대한 불신은 메시지의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그러니 과반 의석을 갖고도 정국에 별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다.

‘방탄 프레임’을 깨지 않는 한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검찰은 두 차례 조사에 이어 추가 조사까지 요구하며 민주당을 사법 리스크에서 해방시켜줄 마음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 기소 시 당무 정지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 80조 적용 문제 등을 두고 사법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본인의 사법 리스크가 당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결단해야 한다. YTN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기소 시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33.4%나 됐다. 제1야당 대표라는 보호막 없이 검찰의 부당한 정치적 수사에 당당하게 맞서 승리한다면 그의 정치적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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