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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복합쇼핑몰 공식화 광주 제2의 유통대전 예고 …신세계백화점 성공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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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현대보다 3년 빠른 1995년 광주 신세계 개점

호남권 대표 백화점 우뚝…경쟁력 잃은 토착 백화점

[편집자주] 지난 대선 이후 복합쇼핑몰이 광주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광주시는 복합쇼핑몰 사업계획서 접수를 공식화했고 국내 유통 빅3 중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그룹이 제안서를 접수했다. 롯데도 복합쇼핑몰 입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뉴스1은 본격적인 '복합쇼핑몰' 유통 대전을 앞두고 지역 상생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광주 유통사'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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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신세계 백화점 전경 자료사진./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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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박준배 이수민 기자 = 가든과 화니, 송원을 중심으로 광주 향토백화점이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 중반 거대 자본을 앞세운 국내 유통업계 '빅3'도 지방 진출 시동을 건다.

롯데백화점은 다점포 전략의 일환으로 광주점을 선택했고 신세계는 지역법인을 준비했다. 현대는 송원백화점에 위탁경영을 맡기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유통 빅3' 중 지역 백화점 입점 시도는 롯데가 가장 빨랐으나 실제 개점은 신세계가 앞섰다. 한발 앞선 개점은 이후 광주 백화점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지법인을 앞세운 지역상생 전략 영향이 컸다.

롯데백화점은 1993년 5월 광주 진출을 선언하며 동구 대인동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부지를 매입했다.

광주 최초의 시외버스 공용터미널은 1976년 대인동 5·7번지 1만7686㎡ 부지에 들어섰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에 대합실은 3305㎡가 넘었다. 16개 회사 차 1000여 대가 28개 방면으로 운행했다.

이 터미널은 광주시의 인구 증가와 대도시화에 따른 직할시 승격으로 1992년 7월 광천동 49번지 일대 10만700㎡로 이전했다. 하루 9만5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롯데백화점은 광천동으로 이전한 대인동 터미널 부지에 '롯데백화점 광주점' 개점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11월 신세계백화점도 광주 진출을 선언했다. 위치는 새로운 버스터미널이 들어선 광천동으로, 터미널 내 판매시설을 20년간 임차해 사용하기로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 이전'이 국내 유통 대기업의 지방 백화점 개점 경쟁의 계기가 된 셈이다.

당시 유통업계는 진출 선언이 빨랐던 롯데가 먼저 개점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백화점 개점은 신세계가 3년가량 빨랐다.

대인동 시외버스 터미널 주인이던 금호가 부지를 롯데백화점과 광주은행에 각각 팔고 광천동 터미널을 완공한 후 이전한 뒤에야 백화점 건물을 짓다 보니 늦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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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대인동 구 시외버스터미널(공용터미널) 일대의 모습. 뉴스1DB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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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신세계는 1995년 4월10일 지역법인 '주식회사 광주신세계'를 설립했다. 개점은 그해 8월25일 이뤄졌다.

지하 3층에 지상 9층, 매장 면적 6400평으로 당시 화니백화점보다 3배나 큰 규모였다. 터미널과 연결돼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였다.

광주신세계는 지역 사회의 요청에 따라 세금을 지역 지자체에 납부하는 지역 현지법인 형태로 설립했다.

지역 법인으로 '중앙(서울)을 근거지로 한 백화점의 지방 진출 1호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부산 현대백화점은 하루 뒤인 8월26일 오픈했다. 광주와 부산 두 곳에서 중앙 백화점이 차례로 개점하며 당시 유통가에선 '중앙백화점의 지방 진출 본격화'와 '지방 향토 백화점의 위기'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광주신세계는 2년 만에 광주 백화점 총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광주 현지법인을 표방하면서 '지역상생'을 추구했고 지역민들의 호응도 컸다.

광주신세계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롯데는 갈팡질팡했다.

1996년 10월 롯데는 대인동 롯데백화점 광주점에 이어 상무지구 상업용지 2258평을 매입해 롯데백화점 상무점도 개점하겠다고 발표했다.

광주신세계에 승기를 내준 만큼 공격적으로 추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1997년 7월 경기 불황과 전국적으로 할인점이 확산하면서 신규사업을 재검토했다.

결국 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9월18일 대인동 백화점만 계획대로 개점하고 상무점은 롯데마트로 전환했다. 롯데마트 상무점은 2000년 9월 개점했다.

광주신세계보다 3년 늦게 개정한 롯데백화점 광주점은 넓은 내부에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넣었다. 지역 백화점 중 '구찌' 매장을 최초로 입점했고, 호남에 '프라다' 매장을 단독 입점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대인동 등 구도심이 공동화 현상으로 점점 쇠퇴하고 서구와 광산구, 북구가 발전하면서 입지가 좋은 광주신세계에 매출이 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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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광주점 전경.ⓒ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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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엔 광주신세계 뒤편에 이마트 광주점이 들어서면서 광천동 일대에 '신세계 타운'이 형성됐다. 2007년 기점으로 광주 백화점 매출은 신세계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면 호남권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우뚝 섰다.

현대백화점은 1995년 오픈한 향토백화점인 송원백화점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1998년 6월 ㈜송원과 15년간 위탁경영 계약을 맺고 구 송원백화점을 '현대백화점 광주점'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광주역 인근 구도심에 위치한 데다 도심 공동화로 매출 부진을 겪었다. 매출도 1000억원에 불과해 광주신세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계약 조건도 매출은 송원으로 귀속되고 현대는 위탁 수수료만 받는 구조여서 별 메리트가 없었다.

결국 2013년 6월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정리 수순을 밟았다. 송원은 이랜드리테일과 운영 계약을 맺고 NC백화점으로 운영했다.

광주신세계와 롯데, 현대백화점의 광주 경쟁은 국내 유통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광주의 빅3 경쟁은 현재 국내 3대 백화점이 모두 있는 부산이나 대구보다 십수 년 빨랐다.

백화점의 모태가 '빅3'는 수도권, 각 지방은 '토착 브랜드' 중심이라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단초가 됐다.

빅3가 광주로 향하면서 지역 백화점과 중앙 백화점이 대결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화니와 가든, 송원 등 토착 백화점의 경영 위기는 현실화했다.

특히 1998년 IMF를 맞으며 토착 브랜드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IMF 이전에는 소비에 버블이 있어, 소득 대비 지출이 컸던 시기다.

'영업이 잘되던 시기', '매출이 떨어지지 않던 시기'만을 겪었던 토착 브랜드는 작은 자본력으로 IMF 때 전부 무너졌다. 그러나 이는 전체 유통사로 보면 중앙백화점의 전국화, 서비스 품질 향상이라는 이점도 있다.

IMF를 기점으로 지역 백화점이 사라지며 이 자리에 '할인점' 등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할인점이 내세우는 'EDLP(EveryDay Low Price)' 전략은 최저가 경쟁을 부추기며 IMF를 겪던 소비자들에게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2000년대 초중반은 할인점 전성시대로, 이들이 국내 유통시장을 끌고 갔다. 광주에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대대적으로 오픈했다.

이때 중앙 백화점이 선택한 전략은 '판촉경쟁'이었다. 누가 더 사은행사를 자주하고, 실용성 있는 사은품을 주느냐, 누가 더 싼 상품을 기획하느냐에 경쟁이 붙었다.

100만원의 상품을 사면 10만원(10%)권의 상품권을 주거나, 냄비나 이불 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유통업계의 경쟁이 득이 됐으나 토착 브랜드는 압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광주만이 아니라 부산 '태화 쇼핑'이나 대구 '대백 프라자' 등도 마찬가지였다. 제한된 시장에서 파이를 나눠 갖기에 토착 브랜드는 힘이 없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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