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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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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이 앞당긴 '전차 시계'…美 힘 쏟는데, 韓 감감무소식 왜 [이철재의 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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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방산 대박을 터뜨린 한국의 K2 흑표는 훌륭한 주력전차(MBT)다. 그러나 2008년 개발이 끝난 뒤론 K2의 성능개량 사업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K2 양산 대수를 확 줄이면서, 군 당국이 성능개량보다 양산증가에 더 신경을 쓴 탓이다. 보수 정부는 적은 수의 K2가 북한의 낡은 전차를 막을 수 있다고 봤고, 진보 정부는 유사시 북진의 선봉을 서게 될 K2가 북한을 자극할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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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차 상상도. 사진 현대로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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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은 3~4년마다 전차의 성능을 개량하고 있다. 요즘 이들 국가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주력전차의 세대교체기가 다가오는 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훈을 반영할 필요가 높아지면서 차세대 전차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반면 한국의 차기전차 사업은 감감무소식이다. 정부 소식통은 “차기전차 사업의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지만, 아직 소요제기도 안 됐다”고 귀띔했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산악 지형이 많은 한반도에서 전차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유사시 기동전으로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전차는 핵심 전력”이라며 “우리도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차세대 전차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차세대 전차는 어떤 모습?



한국도 가만 있지는 않고 있다. 육군은 2020년 차세대 전차 사전 개념 연구를 끝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는 2026년 11월까지 450억원을 들여차세대 전차용 저소음 동력장치 및 대구경 무장 설계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30㎜ 차세대 전차포, 차세대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 무인포탑, 캡슐형 승무원실 방호구조, 방탄세라믹, 대용량 수소연료전지 기반 전동화 등 기술에 대한 응용연구 사업이다. 아직은 차세대 전차의 요구 사양을 상세히 분석히 분석하고 기능을 정리하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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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럼스 X는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움직여 조용히 적에게 다가갈수 있다. GD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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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를 만드는 방산기업인 현대로템은 국기연으로부터 응용연구 사업을 수주했다. 현대로템은 차세대 전차에 인공지능(AI) 기반의 차량운용체계와 유ㆍ무인 복합 운용기술(MUM-T)을 적용할 계획이다. 또 차세대 전차는 다목적 미사일ㆍ360도 상황인식장치ㆍ능동방호장치ㆍ다목적 드론 등을 갖출 것으로 현대로템은 구상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올 7월까지 1억 1500만원의 예산으로 ‘유ㆍ무인 복학운용 환경을 고려한 차세대 전차 체계개념 설계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차세대 전차는 2030년대 후반 선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유럽의 차세대 전차는 2030년대 중반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전차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담으면서, 전차의 3대 요소인 기동력ㆍ화력ㆍ방호력에서 첨단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의 전차가 서방제 대전차 무기에 맥없이 무너지면서 ‘전차 무용론’이 나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전차를 앞세운 반격으로 실지를 되찾으면서 전차는 다시 ‘지상전의 왕자’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러시아 전차의 졸전은 러시아가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서지, 전차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크라이나가 알려준 셈이다.

그렇다면 전차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선 전차는 재블린과 같은 탑어택 대전차 미사일과 바이락타르와 같은 드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방어체계가 차세대 전차에서 시급하다.

그리고 아군과 적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전장관리체계(BMS)는 이제 전차의 필수 장치다. 보병ㆍ포병ㆍ공병ㆍ항공 등 다른 부대와 협동 전투에서 BMS는 없어선 안 된다.

게다가 한반도는 좁은 데다, 북한도 2041년이면 도시화율이 7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밀집한 상태다.



조용히 다가와 타격하는 전차



최근 민간 사용차량의 ‘대세’는 전기차다. 반면 현대 주력전차의 동력원은 아직도 내연기관이다. 대부분 디젤엔진이며, 미국의 M1 에이브럼스ㆍ러시아의 T-80 등 일부가 가스 터빈을 사용하고 있다. 두꺼운 장갑을 두르면서, 최대 속도 시속 60~70㎞로 달리려면 아직 내연기관만 한 게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맞서 친환경 동력원의 필요성이 커지며, 조용하게 움직여 적의 탐지를 어렵게 하는 이점 때문에 하이브리드ㆍ전기동력ㆍ수소연료 전지가 내연기관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육군은 2035년까지 하이브리드 전기 전술 차량을, 2050년까지 완전 전기 차량을 배치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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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넥스터가 개발 중인 140㎜ 전차 활강포 아스칼론(ASCALON). 넥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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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다이나믹스 지상체계부문(GDLS)은 지난해 10월 기술실증 차량인 ‘에이브럼스 X’를 공개했다. 이 전차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달았다. GDLS는 ‘조용한 타격(Silent Strike)’라면서 ‘적은 우리가 오는 걸 절대 듣지 못한다(They’ll Never Hear Us Coming)’고 자랑했다. 또 종합 연비는 일반 M1보다 50%나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한화디펜스는 국기연의 수주를 받아 ‘궤도차량용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장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대한민국방위산업전(DX KOREA)’에서 수소연료전지 군용 차량을 선보였다.

하이브리드ㆍ전기동력ㆍ수소연료 전지는 정숙성뿐만 아니라 발열도 줄여 적의 탐지장비에 들킬 가능성을 줄여준다. 또 레이저 방공체계를 전차에 달 경우 충분한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



드론을 잡는 RCWS는 필수 부무장



전차의 주무기는 전차포다. 서방권 전차는 120㎜, 동구권 전차는 125㎜ 활강포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차 방호력이 높아지면서 전차포 구경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독일과 프랑스는 1990년대부터 140㎜ 포를 연구해왔다.

독일과 프랑스의 차세대 전차 개발 컨소시엄인 KNDS는 2035년까지 완성하려 하는 주지상전투체계(MGCS)의 전차포를 140㎜로 점찍었다. 독일의 라인메탈은 지난해 130㎜ 전차포를 단 KF51 판터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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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메탈의 KF51 포탑에서 이스라엘 유비전의 히어로(Hero)-120 체공형 자폭기가 날아가는 모습(모형). KF5은 체공형 자폭기를 4대까지 실을 수 있다. 라인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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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30㎜나 140㎜ 전차포의 포탄는 길이와 무게 모두 늘어나 전차에 실을 양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에이브럼스 X는 120㎜를 쓰면서 다양한 스마트 포탄을 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한국도 130㎜ 전차포를 고려하고 있다. 변수는 ADD가 연구 중인 전열 화학포다. 기존 전차포가 화학 추진제만으로 탄체를 가속하지만, 전열 화학포는 화학 추진제에다 전기 에너지까지 더해 엄청난 에너지로 전차포탄을 날릴 수 있다. 그만큼 파괴력이 세진다.

2030년대 중반까지 전열 화학포 기술을 확보한다면 차세대 전차는 이를 달 가능성이 있다.

부무장으로 원격사격체계(RCWS)는 이제 필수품이다. RCWS는 차 안에서 조종할 수 있어 사수를 보호한다. 열상 센서ㆍ단거리 레이더를 달면 드론을 잡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의 에이브럼스 X는 12.7㎜ 기관총이 아니라 30㎜ 기관포를 부무장으로 선택했다. 30㎜ 기관포는 목표물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터지는 근접신관 포탄을 쏠 수 있다. 대공용으로 적격이다. 소형 레이저 부무장을 탑재하는 방안도 여러 나라에서 검토하고 있다.



적 대전차 미사일을 하드킬로 요격



전차는 강력한 장갑으로 적의 총탄 속을 뚫고 전진한다. 장갑을 더 두껍게 해 방호력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무거워져 기동력이 줄어든다. 차세대 전차는 무게가 덜 나가면서도 포탄을 튕겨내는 방탄세라믹ㆍ금속복합재료(MMC)를 두를 것으로 보인다.

장갑으로 대전차 미사일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능동방어 체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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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킬 능동방어체계인 아이언 피스트가 대전차 무기를 요격하고 있다 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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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방호체계는 대전차 무기를 재머(전파방해장치)나 복합 연막탄으로 교란해 빗나가도록 하는 소프트킬과 대응탄을 쏴 대전차 무기를 직접 파괴하는 하드킬 등 2가지 방식이 있다.

K2는 소프트킬만 갖췄고, 하드킬은 없다. 한국형 하드킬 개발에 성공했지만, 값이 비싸고 지휘부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채택이 안 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전차 무기의 활약상을 본 지휘부가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대응탄의 파편 때문에 전차 주변에서 함께 작전하는 보병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래서 적 대전차 무기를 그대로 관통하는 다수 폭발성형 관통자(M-EFP)나 강력한 폭압으로 대전차 무기를 부러뜨리거나 다른 각도로 방향을 꺾이게 하는 고밀도 비활성 금속폭탄(DIME)이 대응탄의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더 나아가 전자기 장갑, 레이저 방어막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정도면 SF 수준이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빨라지면 진짜 전쟁터에서 볼 수도 있다.

무인포탑도 방호력을 높인다. 전차 포탑엔 전차장과 포수가 탄다. 전차포에 자동장전장치가 안 달렸다면 장전수도 포탑에 앉는다. 포탑이 피격된다면 이들의 생명이 한꺼번에 위험해진다.

승무원이 포탑보다 장갑이 더 두꺼운 차체로 들어간다면 더 안전해진다. 차기 전차는 차체 안 캡슐형 구조물에 승무원을 태워 방호력을 더 높인다.

또 포탑은 2~3명이 움직일 공간을 마련해줘야 해 높아지고 넓어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멀리서도 전차가 잘 보이게 된다. 반면 무인포탑은 낮고 좁다.

열상 센서와 지상 레이더에 덜 걸리도록 하는 스텔스도 미래 전차에서 반드시 적용해야할 기술이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가시광선을 반사하지 않고 그대로 투과시키는 메타물질을 개발하고 있다.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투명망토를 생각하면 된다.



차세대 전차엔 몇명이 탈까? 3명? 4명?



전차의 승무원은 잠망경이나 조준경을 통해 밖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잠망경으로 볼 수 있는 각도가 제한되고, 조준경은 돌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360도 상황인식 장치가 나왔다. 카메라가 외부 영상을 합성해 승무원의 고글에 뿌려주는 장치다. 이를 통해 승무원은 전차 안에서도 투시하는 것처럼 밖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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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스가 개발한 360도 상황인식 장치인 아이언 비전(Iron Vision). 엘빗 시스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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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차는 유ㆍ무인 복합 운용기술(MUM-T)로 무인항공기(UAV)나 무인차량(UGV)과 함께 작전을 펼칠 것이다. 라인메탈의 KF51은 이스라엘 유비전의 히어로(Hero)-120 체공형 자폭기 4발을 무장한다. 히어로-120은 비가시거리를 정찰하면서, 동시에 주포 사거리를 벗어난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차세대 전차는 AI를 탑재해 미 육군이 추진하고 있는 선택적유인전투차량(OMFV)처럼 필요할 경우 무인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ADD는 사람이 탄 K9이 여러 대의 무인 K9을 이끌고 다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 전차의 승무원은 K2와 마찬가지로 3명(전차장ㆍ조종수ㆍ포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MUM-T 때문에 4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UAV나 UGV를 조종할 인원이 필요하다. AI가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윤리 문제 때문에 살상은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실제로 라인메탈의 KF51은 전차장·조종수·장전수 등 3명에 드론 조종수를 더해 4명이 탑승한다.

방종관 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앞으로 앞으로 전쟁은 국가간 전면전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차세대 전차는 화력과 방호력에 중점을 두고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T-14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미국과 유럽이 차기전차 사업을 고민한 시점은 2015년 러시아가 차세대 전차 T-14 아르마타를 공개하면서다. T-14는 무인포탑을 채택했고, 사격통제장치와 전자장비가 앞서는 수준까지 발전해 서방권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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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록히드마틴이 육군에 납품한 간접 화력 보호-고 에네지 레이저(IFPC-HEL) 실증기. 300㎾의 레이저로 드론이나 포탄을 막아낸다다. 이보다 좀 더 작고 가벼운 레이저 체계가 전차에 탑재될 수 있다. 록히드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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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T-14는 양산에 실패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러시아의 방위산업이 무너졌고, 경제제재로 부품을 구하기가 힘들어진 데다, 양산 기술도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전차의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은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T-14가 보여준다. 최현호씨는 ”모든 기술을 한꺼번에 적용하기보다 점진적 개량을 통해 통합하는 단계적 발전 방식을 채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발 비용이 폭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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