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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개발만 잘하면 뭘 해?”…잡스를 살린 ‘팀 쿡 효과’ [오기자의 테크株 흥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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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재고’가 애플 수익성 갉아먹어
공급망관리 최고 전문가 팀 쿡 영입
핵심 공급업체 100→24곳으로 정리
재조공정·재고 확 줄이며 수익성 개선


매일경제

팀 쿡 애플 CEO. <사진 출처=팀 쿡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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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어쩌면 그리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물들이 제때 나타나주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1997년 위기의 애플에게는 너무 많은 제품군, 말라가는 자금줄 등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와 무관치 않은 ‘재고’도 수익성을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애플의 주력인 컴퓨터 사업에서 재고는 꽤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경영권을 넘겨받을 때 창고에 2개월분이 넘는 컴퓨터 재고가 있어 수익에 미치는 타격이 최소 5억달러에 달했을 거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2달이면 적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조금 과장을 더하자면, 컴퓨터는 마치 빵이나 우유 같이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애플은 당시 컴퓨터업계에서 가장 재고가 많은 회사였습니다. 잡스는 2달이 넘던 재고 보유량을 1998년 초엔 1달 수준으로 대폭 줄여버립니다.

특히 잡스가 모든 것을 직접 생산는 데서 탈피해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면서 재고 관리뿐 아니라 공급사 관리까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재고 문제는 애플의 구세주였던 스티브 잡스에게도 꽤 골치아픈 문제였나 봅니다. 아무래도 불 같은 성격인 잡스에겐 영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사 운영 담당자가 못 버티고 나간 뒤로 1년 동안을 직접 운영 담당자 노릇까지 해야 했습니다. 한 공급업체와는 소송전까지 벌어졌고요.

하지만 ‘될놈될’이었을까요. 때마침 복덩이가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팀 쿡’입니다. 쿡은 전 시간에 다뤄본 조너선 아이브처럼 잡스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인물입니다. 잡스의 사후 현재까지 애플의 CEO를 맡고 있기도 하고요.

당시엔 잡스에 가려졌지만, 아이브처럼 쿡도 자기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인재였는데요. 바로 공급망관리(SCM)입니다. 쿡은 원래 IBM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북미 PC 사업을 총괄했던 인물입니다. 요즘은 IBM을 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 혹은 ‘왓슨’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기업이라고 생각할텐데요. 원래 IBM은 세계 최고의 컴퓨테 제조사였습니다. 애플과 경쟁관계이기도 했고요. IBM이란 사명도 무려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의 약자입니다. 2005년 중국 레노버에 사업을 매각하며 탈바꿈하기 전까지는요.

어쨌든 쿡은 이때 이미 복잡한 제조 및 생산 공정을 효율화하는 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었고요. 애플로 오기 직전에는 개인용 컴퓨터 공급 업체인 컴팩에서 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당시엔 거의 다 망한 것 같았던 애플에 온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잡스를 만나고 5분도 되지 않아 그의 마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쿡은 오자마자 애플의 핵심 공급업체를 100곳에서 24곳으로 확 줄여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애플은 막대한 협상력을 갖게 됩니다. 애플의 창고 19곳 중에서 10곳을 폐쇄하며 재고 줄이기에 나섰고요. 1998년 초 잡스가 1개월분으로 줄인 재고는 쿡 입사 후 6개월도 되지 않아 6일분으로 줄었습니다. 1년 뒤인 1999년 9월 무렵엔 무려 2일분까지 재고가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재고의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 제조 공정을 4개월에서 2개월로 줄여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습니다. 그만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 수익성이 대폭 증대되었고, 컴퓨터 생산 과정에서 최신의 부품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쿡에 대한 잡스의 평가는 짧지만 강렬합니다.

“쿡 덕분에 저는 그가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한 많은 일을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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