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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국기는 떼였지만 승기는 잡았다...사발렌카, 호주오픈 女단식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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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출신 사발렌카

첫 메이저 대회 정상

국기는 떼였지만, 결코 백기는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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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사발렌카가 28일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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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아리나 사발렌카(25·세계 5위)가 2023시즌 첫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여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사발렌카는 28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엘레나 리바키나(24·카자흐스탄·25위)를 2시간 28분 혈투 끝에 세트스코어 2대1(4-6 6-3 6-4)로 제압하고 왕좌에 올랐다. 사발렌카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세트에서 사발렌카는 서브를 연이어 놓치는 더블 폴트를 5개(리바키나 0개)나 남발하고, 실책도 9개(6개)를 범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사발렌카가 불안하게 출발을 하자 리바키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브레이크 기회 3번 중 2번을 득점으로 연결시켜 상대 서브 게임을 따왔고, 결국 세트를 가져갔다.

사발렌카는 두 번째 세트와 세 번째 세트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부를 뒤집었다. 두 번째 세트에서 서브에이스만 7개를 터뜨리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강서버의 위용을 뽐냈고, 과감하고 공격적인 샷으로 리바키나를 흔들었다. 사발렌카는 브레이크 기회를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세 번째 세트에서도 사발렌카는 지친 기색 없이 이날 그의 가장 빠른 서브(시속 192km)를 꽂아 넣었다. 공격 성공 횟수(18-13)에서 앞서고, 실책(9-13)도 최소화하며 리바키나를 압박했다. 마지막 게임에서 사발렌카는 리바키나와 듀스와 어드밴티지 상황을 오고가는 접전을 벌이며 챔피언십 포인트를 3번이나 놓치는 등 주춤하는 듯 했지만, 리바키나의 샷이 라인밖으로 나가면서 마침내 웃을 수 있었다.

사발렌카는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코트에 드러누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자신의 코치와 팀이 있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이들과 부둥켜안으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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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 이후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자인 아리나 사발렌카(왼쪽)와 준우승자인 엘레나 리바키나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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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 리바키나는 “사발렌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다.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고 싶다”면서 “남은 시즌 동안 행운을 빌고, 앞으로 더 멋진 맞대결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리바키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소소한 감동을 안겼다.

사발렌카는 이에 화답해 “지난 2주 동안 멋진 승부를 보여준 리바키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언급한 대로 우리의 다음 대결을 기대하고 있겠다. 그게 결승 무대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웃으며 “호주 팬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많은 시련을 함께 겪은 팀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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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사발렌카가 28일 호주오픈 여자 단식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들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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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키나는 작년 윔블던에선 우승했지만, 두 번째로 메이저 단식 결승에 진출한 이번 호주오픈에선 준우승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커리어 최고 랭킹인 10위까지 오를 전망이다.

앞서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준결승에만 3차례(2021 윔블던, 2021 US오픈, 2022 US오픈) 진출한 사발렌카는 처음 오른 결승에서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는 영예를 안게 됐다.

특히 그는 올해 호주오픈을 앞두고 벨라루스 국기를 떼고 뛰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작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테니스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침공 국가인 러시아와 이에 동조한 벨라루스 출신인 선수들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와 여자 프로테니스(WTA) 투어, 그리고 국제테니스연맹(ITF)은 즉각적으로 러시아와 ‘동맹국’인 벨라루스 선수들의 대회 출전은 허용하면서도 이들의 국기 게양이나 국가 연주는 허용하지 않는 조처를 취했다.

그래서 ATP 및 WTA 투어 홈페이지와 각종 메이저 대회 홈페이지, 나아가 중계방송에서까지 벨라루스 국기가 표시돼야 할 사발렌카의 이름 옆자리엔 텅 빈 하얀 ‘공백’만 있다. 이날도 다름이 없었다.

사발렌카는 앞서 호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냥 운동을 하는 선수들일 뿐이다. 우리가 왜 정치와 연관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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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나 사발렌카가 28일 호주오픈 여자 단식 우승을 확정 짓자 코트에 드러누워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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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렌카는 국기를 잃었지만, 경기에선 승기를 잡았다. 벨라루스 출신 선수가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에 등극한 것은 빅토리아 아자렌카(34·24위)의 2013년 호주오픈 우승 이후 10년 만이다. 그는 세계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사발렌카는 시상식 말미에 “다음 해에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올테니, 팬들도 더욱 열렬한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여운을 남기며 대회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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