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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천원짜리 팔아 매출 3조 회장님 “저가지만 싸구려는 아냐” [방영덕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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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부 다이소 회장 [사진출처 = 아성다이소]


“다이소 갈까?”

이사를 한 날, 초등학생 아들이 묻습니다. 짐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저와 달리 혼자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마침 집 근처에서 본 다이소가 생각나 ‘놀러가자’는 것이었죠.

초등학생들에게 균일가숍 다이소는 쇼핑의 천국입니다(초등계의 백화점이라고 하지요). 엄마에게는 “한번 골라봐”라고 아이에게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곳, 이사 후 당장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월급과 내 아이 성적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치솟고 있습니다. 난방비는 또 왜 이렇게 오른 것인가요. 1000원짜리 1장으로 살 수 있는 게 정말 거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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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의 겨울용품 [사진출처 = 다이소]


그런데 다이소에선 1000원에 ‘득템’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려 1만5000여가지나 됩니다. 1만원이면 ‘플렉스’ 가능합니다.

혹시 ‘다이소깡’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유튜브나 틱톡 등에는 다이소에서 제품을 사 언박싱하는 영상인데요, 그야말로 넘쳐납니다.

단순히 제품이 싸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게 어떻게 1000원이지?” 라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오는 품질 보증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언박싱 영상들입니다.

박정부 다이소 회장은 무조건 싼 게 다이소의 가치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다이소 상품이 저가이긴 하지만 싸구려는 아니라는 것, 그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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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의 1000원짜리 ‘프린세스 목걸이’ [사진출처 = 배우 한소희 인스타그램]


가격에 품질, 재미, 볼륨 등을 함께 녹여 ‘놀라운 가치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그의 경영 이념입니다.

올해로 80세를 맞은 박 회장이 그 동안의 소회와 경영 비결을 담아 ‘천원을 경영하라’는 제목의 책을 최근 펴냈습니다.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아 매출 3조원을 일군 비결이 뭔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 가격 인상의 유혹을 어떻게 견디는 것인지 궁금해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의 일부 내용을 독자분들과 공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돈,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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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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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가장 기본적인 화폐단위인 1000원짜리 상품을 얼마나 많이 유지할 수 있는가가 다이소의 정체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1000원이란 단순히 화폐의 단위가 아니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한다는 의미”라며 “가격보다 최소한 2배 이상의 가치를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이 다이소가 추구하는 1000원 정신, 균일가 정신이다”고 말합니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다이소입니다. 그들이 성실하게 흘린 땀방울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로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죠.

다이소는 사업초기부터 책정한 균일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요. 가격 단위는 ▲500원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으로 6가지인데요. 이 중 1000원, 2000원짜리 상품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진’ 아니라 ‘만족’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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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판매한 와인잔 [사진출처 = 다이소]


기업은 이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초창기 다이소의 마진은 겨우 1~2%였습니다. 1000원짜리를 1000개 팔아야 매출이 100만원이고, 그 중 마진은 고작 1~2만원 정도인 것이죠.

박 회장은 “시류에 따라 적당히 이윤을 좇으려 했다면 이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이 사업은 마진을 좇는 순간 망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합니다.

상품이 싸고 좋으면 고객은 반드시 온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때문에 10만명에게 10%의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100만명의 선택을 받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이윤을 남기자는 생각입니다.

다이소에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디자이너만 50여명에 달합니다. 국내 유통업체 중 디자이너를 이처럼 보유한 회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욱 정성을 들이는 것이죠.

박 회장은 “벤츠타고 와 1000원짜리 상품을 사가는 고객도 많다. 부자라도 1000원보다 가치가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법”이라며 “이는 단지 값이 싸서 다이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품질이 좋아서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판매가 정해놓고 상품 개발...“원가와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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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가 만든 뷰티 브랜드 ‘초초스랩’. 다이소에서는 초초스랩의 립스틱과 아이섀도를 각각 3000원 판매 중이다. [사진출처 = 초초스랩]


다이소에서는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판매 가격을 먼저 결정한 후 상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코끼리 집어넣기와 같은 미션이라고나 할까요. 대부분의 기업이 제품 원가에 적정 이윤을 붙여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박 회장은 “지금도 주말을 포함해 하루에 20가지씩 새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한 번도 ‘이 상품을 팔아서 얼마를 남겨야지’란 생각으로 설계해 본 적이 없다”며 “좋은 물건을 볼 때마다 ‘이 상품을 어떻게 1000원에 팔 수 있을까? 저런 기능과 매력을 어떻게 1000원대에 구현할까’에만 골몰한다”고 말했습니다.

판매가 1000원이란 것을 정해놓고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드려니, 게다가 원가가 계속 오르는데 균일가를 고수해야하는 이런 상황,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게 사실입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 “‘마른 수건 쥐어짜기’가 매일의 일상”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원가와의 사투’라고도 말했습니다.

매년 20회 이상 해외출장 간 ‘협상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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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판매한 욕실용품 [사진출처 = 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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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원가를 맞출 수 있는 곳이라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까지만해도 매년 20회 이상 해외 출장을 나갔다고 합니다.

무조건 싼 곳만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박 회장은 “가성비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란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격보다 최소한 2배 이상의 가치를 갖는 제품을 만들어줄 곳을 찾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가령, 대나무 상품은 베트남에서, 스테인리스 제품은 인도에서, 접시는 브라질에서, 도자기와 유리 제품은 터키에서 공급받는 식입니다. 중간 무역상을 통한 수입으로는 도무지 원하는 가격과 품질을 얻기 어려워 직접 제조업체를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다이소는 현재 중국, 동남아, 중동, 유럽 등 전세계 35개국 3600여 업체에서 상품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일본기업이라고?...우린 한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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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부 다이소 회장 [사진출처 = 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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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한일관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야기되는 회사의 국적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일본 다이소와 한국 다이소. 분명 다른 회사입니다. 하지만 다이소란 이름을 같이 쓰다보니 일본 불매운동이나 반일 감정이 생길 때마다 곤욕을 치렀습니다.

한국 다이소는 박 회장이 운영하는 아성산업이 운영을 합니다. 일본 다이소를 운영하는 곳은 대창산업입니다. 일본말로 ‘다이소산교’라는 회사입니다.

박 회장은 그가 물건을 납품하던 일본 다이소산교로부터 2001년 지분 투자(34%)를 받으면서 다이소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1997년 첫 1호점인 ‘아스코이븐프라자’에서 쉽고 부르기 편한 ‘다이소’로 이름으로 바꾼 겁니다.

여기서 잠깐, 도대체 왜 다이소산교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아야했는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오랫동안 다이소산교에 제품을 납품해온 박 회장은, 어느날 다이소산교 회장이 자신들에게만 독점 납품 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행여 다이소산교 측에서 거래관계를 끊기라도 하면 타격이 커 위기 관리 차원에서 ‘그럼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해달라’고 박 회장이 제안했습니다. 일본 다이소와는 전략적 파트너일 뿐이란 입장입니다.

박 회장에 따르면 다이소산교가 지분을 이유로 경영에 참여하거나 매장 운영에 대해 관여하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적도 없고, 브랜드 로고 자도 다릅니다.

그는 “삼성전자와 네이버는 외국계 지분이 60%에 달한다”며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외국기업이라고 할 수 있나? 국내에 회사가 있고, 경영권을 갖고 있으면서 고용이나 생산활동을 통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나라 기업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한편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이름을) 다이소로 덜컥 변경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며 “브랜드명이 이토록 오랜 기간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줄 몰랐다”고 털어놨습니다.

탁상 놓인 달력만 5개...“열정엔 유효기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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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의 집무실 책상에는 5개의 달력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첫번째 달력은 지난달 달력입니다. 상품을 발주하고 공급하는데 시간이 소요돼 지나간 날짜들도 꼭 챙겨봐야하기 때문입니다.

2개는 이번달 달력인데 하나는 우리나라, 다른 하나는 일본 달력입니다. 일본에 수출을 많이 하다보니 일본 공휴일과 명절 등을 피해 상담을 하러 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나머지 2개는 앞으로 두 달의 달력인데요. 수많은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출고하는 일을 챙기기 위해섭니다.

박 회장은 사실 1000원 한 장에 올인하느라 박 회장은 달력을 봐도 별다른 계절 감각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오로지 상품의 일정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요.

당초 회사 내 임원들은 이번 책 출간을 말렸다고 합니다. 행여 다이소의 영업비밀이 누설될까 봐요. 그럼에도 출간한 이유에 대해 박 회장은 “‘열정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어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박 회장 본인부터 45세 창업을 했습니다. 너무 늦은 나이에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은 아닌지 불안한 적도 있었지만, 책 말미 ‘원자(原子)와 같은 작은 성실함이 내 운명을 바꿨다’고 말합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작은 것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지키고 당연한 것을 꾸준히 반복했던 것, 그것이 오늘날 다이소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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