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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근골격 갈아 만드는 빵…“노동자들은 왜 이리 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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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제빵공장 생산직 여희씨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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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할 때 소음 문제가 있어요.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 크죠. 특히 배합기 소리요. 어떤 건 웅-웅- 하는데 멀리서도 귀가 아파요. 스테인리스 통이 와장창 부딪히는 소리도요. 모든 게 다 무거운 스텐이라 어디 좀만 부딪혀도 소리가 커요. 빵 옮기는 수레 ‘락카’도 철제라, 끌고 갈 때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해요. 기계 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요. 지속적인 소리에 일시적인 소리까지, 잠시도 조용할 때가 없어요. 큰 소리가 쾅쾅댈 때마다 실제 귀가 아픈데, 여기에 계속 노출되다간 사람이랑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보건실에 귀마개가 있지만 오래 끼면 불편해서 잘 안 쓰게 돼요.”

여희(가명)씨는 생산직이다. 소음 가득한 제빵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아침(저녁) 7시 반에 시작해 저녁(아침) 7시 반에 마치는데, 일주일마다 주야간이 바뀐다. 워낙 빵을 좋아해 빵 생각만으로도 즐겁다던 사람이다. 선물도 세계 빵 도감 책으로 하던 사람이다. 24시간 빵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노동자 여희씨는 행복할까.

생산직 노동가치는 왜 최저?

“공장 기계는 계속 돌고 주야로 사람만 바뀌어요. 주 52시간 일하는데, 점심(야식)시간 빼고 11시간씩 5일이면 55시간이니까, 주중에 하루 3시간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출근해요. 시차퇴근, 시차출근이라고 하죠. 주 40시간 월 최저임금이 실수령액 181만원이잖아요? 이걸로는 생계비가 안 되니까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이 붙는 일자리를 찾는 거죠.”

이곳의 고용은 단기계약직·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나뉜다. 단기직은 계절상품 생산에 일시 충원하는데, 시급이 상대적으로 높아(1만2천~1만3천원) 20대도 많이 몰린다. 무기직의 임금은 최저임금과 비슷하나, 일정 기간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규직은 상여금과 직원 복지가 생긴다. 그런데 빨리 목돈을 벌겠다고 온 단기직도, 정규직을 바라고 온 무기직도 못 버티고 금방 떠난다. 그래서 모집 공고가 유독 잦다. 구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높은 시급으로 정규직을 뽑는다면 어땠을까.

“힘든 일을 잘 버티는 편인데, 나도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동안 도망가는 사람 많은 데서 일해봤는데, 나중에 깨달았어요. ‘아, 저 돈 받고 저 일을 하면 안 되는구나. 도망간 애들이 현명하구나.’ 기계가 도는 동안 빵이 쉴 새 없이 나와요. 그러면 빵을 스텐 채반에 담아 계속 옮겨요. 채반이 무겁죠. 11시간 나르면 나중에 손목이 막 후들거려요. 어깨가 빠질 것 같아요. 계속 똑같은 동작을 하니까요. 반죽 젓는 사람은 팔이 아프죠. 집에서 반죽하는 걸 상상하면 안 돼요. 다들 손목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해요. 그리고 여기는 다 11시간을 서서 일해요. 앉을 곳도, 앉을 시간도 없어요. 한자리에 계속 서서 일하면요, 서너시간만 해도 다리가 너무 아파요.”

여희씨는 일할 때면 종아리에 압박 스타킹을 신는다. 사무전문직에서 생산직으로 이직했을 때 “종아리가 터질 정도로” 아파봤다.

“그때 대체 이걸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는데 다른 언니들은 힘들다는 얘기를 안 해요. 그냥 ‘힘들지, 다리 아프지’ 이러고 말아요. 내가 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사회는 몸을 쓰는 걸 왜 하찮게 여기지? 이런 사람들의 노동가치를 왜 항상 최저로 취급하지?’ 생산직을 하면 어딘가 아프잖아요. 반복 노동을 하니까. ‘생산직은 누군가의 근골격계를 갈아서 만드는 일이다’라고 나는 정의 내려요. 식품도 누군가의 근골격을 간 거죠. 야간노동 오래 하면 몸이 고장 난다고 하잖아요. 먼 미래에 다 병원비로 나가는데, 생산직 대우가 너무 박해요. 대체 가능한 노동이라고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됐죠. 임금 올릴 생각은 안 하고 외국인 노동자로 메꾸려고 하잖아요.”

고카페인 음료로 버티는 심야노동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야간 근무 때면 여희씨는 적잖이 긴장한다. 주간에 장시간 노동도 만만찮은데 야간이다.

“첫 야간 때였는데, 3일째 되니까 막 두통이 오더라고요. 지금이야 적응해서 두통 올 때쯤 야간 근무가 끝나기는 하는데 아직도 두렵죠. 그때 하루 3시간 잤어요. 아침에 퇴근해서 자려고 누우면 오전 11시 정도 돼요. 해가 쨍쨍하니까 와서 바로 잠을 못 자요. 감기 잘 안 걸렸는데, 바로 감기가 와요. 면역력이 떨어진 거죠. 아침까지 버티려고 야식을 먹는데 소화가 안 돼요.”

여희씨가 겪은바 주야간은 주 생산 품목이 다를 뿐, 야간이라고 생산량과 생산 속도가 줄지는 않았다. 위험을 고려해 더 쉬게 하는 장치도 없었다. 다만 조회에서 관리자가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에 사고가 제일 자주 나니까, 그때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라’ 당부했다. “처음엔 커피로 버티려고 했어요. 밤 12시쯤 마셨는데, 새벽 3~4시쯤 되니까 잠이 쏟아지고 멍해져서 고문받는 것 같았어요. 4~5시쯤 되니까 서 있는데 뒤로 넘어갈 것 같아요. 큰일 나겠다, 위험하다 싶었죠. 그다음 번 야간부터는 에너지 드링크를 먹었어요. 큰 거 사서 새벽 1시쯤 야식 먹고 나서 반 마시고, 새벽 4시쯤에 한번 더 먹어요.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날 때처럼 말똥말똥하게는 안 되지만, 덜 졸리니까 참고 버텨요.”

작동하는 기계 앞에서 믿고 의지할 건 고카페인 음료뿐. 여희씨는 시차퇴근하는 하루를 빼고 나흘간 마신다. 사람마다 달라 생생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주간보다 현장 분위기가 처지는 게 눈에 띈다고 한다.

“하루 8시간 일하면 난,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씻고 약간의 여유를 부리고 자고 일어나면 어느 정도 피로가 풀려서 다음 하루 치를 열심히 일하겠는데, 이 회사는 기본으로 11시간이잖아요. 이게 몇년씩 누적되니까 사람들이 항상 피곤한 상태예요. 교대 근무보다는 12시간 근무가 문제 같아요. 8시간으로 3교대 안 되나요? 그러면 돈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어렵겠죠? 이 회사의 좋은 점은, 노동자들이 성실한 거예요. 다들 열심히 일하려는 분들인데 그만큼 대우는 못 받아요.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순할까요? 좀 더 영악하고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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