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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제 '2만원 지폐'도 생각해 봐야 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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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에선 '2' 지폐가 대세…우리도 바꿀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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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 음식점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쳤는데, 함께 있던 아이한테 "삼촌이 아빠 말 잘 들으라고 주는 거야" 하면서 5만 원을 쥐어 줬답니다. 고맙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어린아이한테 뭐 이렇게 큰돈을 주냐고 살짝 실랑이를 하면서도, 나도 이런 경우에, 1만 원은 너무 적고 5만 원을 꺼내 들어야 할 텐데 부담이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렇게 1만 원과 5만 원 사이에서 고민을 해본 경험들, 한 번씩은 있으실 겁니다. 설 전후해서 그래서 '3만 원 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가수 이 적 씨가 처음 SNS에 글을 올리면서 화제가 됐는데,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적잖았습니다.

전 세계 주요 지폐들은 이런 '중간 액수' 지폐가 이미 있습니다. 달러는 10달러와 50달러 사이에 20달러 지폐가 있죠. 유로와 위안화도 똑같이 20유로, 20위안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전 세계 주요 나라 중에 1천 원 5천 원, 1만 원 5만 원 식으로 1, 5단위로만 지폐를 만든 나라는 우리나라와 딱 한 나라가 더 있는 정돕니다. 어느 나라인지 느낌 오시나요?

2. 우리나라에서 처음 지폐가 나온 건 1902년입니다. 당시 대한제국이 '호조태환권'이란 지폐를 5냥, 10냥, 20냥, 50냥, 네 종류로 찍어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모두 소각돼서 역사에 묻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사용된 첫 지폐는, 우리나라 정부가 만든 게 아니라, 같은 해에 일본의 민간 은행인 제일은행이 자기들 마음대로 발행한 '제일은행권'이 돼버렸습니다. 돈 단위도 '원'이 아니라 '엔'으로 적어 넣었고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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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마다 왼쪽 위에 영어로 또 금액을 적어놨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1엔, 5엔, 10엔 지폐만 있죠. '호조태환권'에는 있었던 '20냥' 중간 단위 지폐가 이때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본 본토에서 쓰는 지폐가 1엔, 5엔, 10엔이었거든요. 제일은행이 그걸 그대로 베껴온 겁니다. 이후 강점기 내내 화폐 단위만 원으로 달라졌지, 계속 1원, 5원, 10원으로 지폐를 발행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1, 5, 10으로 이어지는 지폐 단위는 또 하나의 일제 잔재인 셈입니다. 12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한 번도 그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어느새 당연히 돈은 1, 5, 10으로 가는 거라고 믿게 됐습니다.

3. 그런데 단순히 일제 잔재란 이유만으로 2만 원권을 생각해 보자는 게 아닙니다. 틀이 딱 박혀서 생각을 잘 못할 뿐이지, 2만 원권을 만들면 쓸 곳이 또 많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죠. 미국에서는 20달러가 사실상 가장 많이 쓰이는 지폐입니다. 그 위에 50달러 100달러 지폐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실제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ATM부터 50, 100달러 지폐는 들어있질 않죠. 2백 달러, 3백 달러를 뽑아도 20달러로 열 장, 열다섯 장을 뱉어냅니다. 일반 가게들도 '우리는 20달러 이하 지폐만 받습니다"고 써놓는 곳들이 꽤 있을 정도로 또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람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큰돈은 강도를 당할 수 있다든가, 위험이 크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요, 가게 입장에선 고액 화폐는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는데, 걸러 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도 갖고 있습니다.

통계로도 입증됩니다. 발행된 건 100달러 지폐가 제일 많긴 합니다. 2021년 기준, 177억 장이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100달러는 유통용으로 쓰이질 않습니다. 80%가 미국 바깥에 있고, 그마저도 금고에 넣어 놓거나, 겉으로 드러내고 하기 어려운 불법성 거래에서 주고받는 식의, 의도하지 않았던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정부 추산으로 20달러 지폐는 찍어낸 뒤에 너덜너덜해져서 폐기될 때까지 7.8년 걸리는데, 100달러 지폐는 22.9년을 살아남습니다. 그만큼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 뒤로는 140억 장이 유통 중인 1달러 지폐가 2위고요. 3위가 119억 장을 찍어낸 20달러 지폐입니다. 5달러 10달러 지폐가 각각 34억 장, 23억 장인 것과 비교하면, 20달러가 네 배, 다섯 배 많이 돌아다니는 셈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결국 미국에선 지폐를 꺼내서 쓴다 하면, 20달러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겁니다.

유로는 제일 많이 발행된 지폐가 50유로입니다. 전체 지폐의 49%,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16.3%를 차지하는 20유로 지폐입니다. 10유로가 10.2%니까, 20유로가 두 배 가까이 많이 돌아다니는 셈이고, 실생활에서도 20유로가 쓰일 일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4. 그래서 우리도 2만 원권이 나오면 상당 부분 1만 원권의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렇게 안 살아봐서 그렇지, 사용할 때도 2만 원권은 편한 부분이 많습니다. 쓰는데 용기가 필요한 5만 원권과, 조금만 넣어도 두툼해지는 1만 원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대신에, 2만 원권을 넣으면 더 실용적이고 편할 수 있습니다. 축의금 조의금도 5 혹은 10 대신, 5+2 조합을 해서 7을 맞춰도 되고, 세뱃돈, 용돈도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새로 돈 찍는 데 세금만 더 쓰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2만 원권이 생기면 그만큼 5만 원, 1만 원권의 사용처를 잡아먹어서, 장기적으론 정부가 들여야 하는 비용이 오히려 적어질 수 있습니다.

작년 말 기준 5만 원권은 30억 5천만 장, 1만 원권은 16억 3천만 장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중에 5만 원권은 43.5%가 어느 집 금고나 장롱에 들어가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실제 유통용으로 5만 원권 중에 50% 정도가 쓰인다는 건데, 이 부분에 더해서 1만 원권의 용도까지 2만 원권이 잠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20달러, 20유로가 10달러, 10유로보다 많이 쓰이는 것 같은 일이 우리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초반에는 새로 지폐를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초기비용이 들어갑니다. 지폐를 1장 찍어내는 비용으로 보통 2백 원 정도 들어가니까, 1억 장을 찍으면 2백억 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2만 원권 한 장이 1만 원 두 장을 대체하는 효과를 낸다면, 중장기적으로는 1만 원권 발행이 줄어들면서 전체적인 지폐 제조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제 지폐를 잘 쓰지 않는데 2만 원권을 꼭 내야 하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금이 필요한 사람과 경우가 또 있죠. 한국은행이 분석해 봤더니, 여전히 우리나라 가구들은 평균적으로 매달 51만 원을 현금으로 씁니다. 그리고 한 사람당 지갑에 평균 8만 2천 원을 넣고 다니고 있고요. 물건 살 때, 서로 돈 주고받을 때, 교회 같은 데서 십일조 낼 때 등등은 1만 원권을 많이 쓰고, 경조사에는 5만 원권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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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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