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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국민연금 질문 3편] 재분배 없는 연금은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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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2055년. 지난 1월 2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발표한 연금재정 고갈 시점입니다. 기존 고갈 시점보다 2년 더 앞당겨졌습니다. 젊은 세대는 '이러다 우린 연금을 못 받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는 방법이 최선이라 주장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재정관리방식을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요. 독일처럼 말이죠.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국민연금 향한 질문들' 제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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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민연금 향한 질문들 제2편(통권 520호)'에서 독일이 적립방식의 국민연금제도를 부과방식으로 바꾼 사례를 얘기했습니다. 낯선 용어를 쉽게 풀어보면, 적립방식은 가입자가 납입한 보험료 액수(입구)와 연동해서 수급자의 기대연금액(출구)이 정해지도록 설계한 재정관리 방법입니다. 적립금이 있는 게 특징이죠.

부과방식은 물가상승률 등 다양한 변동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입구와 출구를 열어둔 채 보험료를 걷어 수급자에게 바로 지급하도록 설계한 재정관리 방법입니다. 따라서 적립금이 거의 없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국민연금 향한 질문 제1편(통권 515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2편에서 말한 건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적립금이 고갈된 걸 확인한 독일 정부가 그 이후 재정관리 방식을 부과방식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그런데 독일이 재정관리 방식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적립금 고갈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은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를 다시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 독일이 재정관리 방식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요.

"네 맞습니다. 지난번엔 적립방식의 역기능과 기금고갈론의 허점을 지적하다 보니 독일 정부가 전쟁 과정에서 국민연금 적립금을 갖다 쓰는 바람에 적립금이 고갈된 얘기를 먼저 했는데요. 물론 그 사건이 적립 방식의 타당성을 다시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하긴 했습니다만, 전쟁 이후에 부과방식으로 전환한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 어떤 상황이 있었던 거죠.

"전쟁 후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노인들은 연금으로만 살았어요. 그런데 국민연금이 실생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적립방식은 적립금의 자산운용 실적에 근거해서 연금급여를 산정하지만, 두차례의 전쟁을 하는 동안 자산운용 실적이 좋았을 리 없으니 노인들이 받는 연금도 형편없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 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적립방식에서는 연금수령액이 자신이 내는 보험료 액수에 연동합니다. 보험료를 많이 내면 연금수령액이 많고, 적으면 수령액도 적죠. 당연히 가난해서 보험료를 적게 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훨씬 더 궁핍하게 됐고, 부유한 이들은 연금수령액도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수급자 간 빈부격차가 나타난 거죠."

✚ 노후 보장 대책으로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했는데 실제 보장도 안 되고, 심각한 빈부격차까지 나타났다는 거군요. 국민연금 제도에 관한 불신이 아주 컸겠네요.

"그렇습니다. 이런 수급자 간 연금수령액 빈부격차 현상은 현재 적립방식을 택한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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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료를 적게 내면 당연히 연금수령액도 적어야 하는 공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있겠죠. 하지만 대다수 독일 국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보험료를 적게 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과연 그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빈곤해져서 보험료를 적게 낸 것일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건데, 결론은 '그렇지 않다'였습니다. 그래서 재분배가 실현되지 않는 연금제도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세대 간 계약'을 기본으로 한 부과방식을 결정하게 된 겁니다."

✚ '세대 간 계약'이라는 건 뭔가요.

"'생산 세대'가 '비생산 세대'를 부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과거에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비슷한데, 중요한 건 '비생산 세대'에는 노인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에 그 아이들이 자라서 '생산 세대'가 될 테니까 모자람 없이 든든하게 지원해주자는 거죠."

✚ 좋아 보이긴 하지만 뭔가 맹점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는 청장년층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운 것 아닐까요. 더구나 인구가 줄고 고령화하는 사회에서는 더 큰 부담이 생길 것 같습니다만.

"좋은 지적입니다.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그래서 중요해지는 거죠."

✚ 무슨 뜻인가요.

"우리는 지난 기사에서 적립방식을 택한 우리나라 연금재정 고갈론의 원인을 얘기했습니다. 그걸 다시 꺼내 볼게요. 연금재정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연금을 수급하는 노인이 많아져서'가 아닙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이 많아져서'입니다. 노인을 일터에서 몰아내기보다 '점진적 퇴직'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한 건 그래서입니다. 퇴직 시기를 늦추면 일정한 소득이 생기고, 연금에 의지하는 비중도 줄어요. 소득이 있으니까 당연히 연금보험료도 더 걷을 수 있겠죠. 연금수급자를 부양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 그러니까 결국 적립방식의 연금재정 위기의 해법도, 부과방식의 부담 집중에 관한 문제의 해법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 노인들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킬 수 있느냐' '이들에게 소득을 얻게 하고, 얼마나 퇴직을 늦출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적립방식의 연금재정 고갈론도, 부과방식의 부담 집중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폐해가 많은 적립방식보다 부과방식이 더 좋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사실 마틴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이런 주장도 합니다. 부과방식은 보험료가 즉각 수급자에게 가서 소비로 이어지니까 저축이나 자본축적을 어렵게 한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건데요.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만약 온 국민이 모조리 저축(적립금 쌓아두기)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다는 거죠. 그런데 이 논쟁은 수십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단정 짓기 어렵다는 거죠. 다만 우리는 너무 적립방식만 고집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생각을 다양하게 해볼 필요가 있어요."

✚ 독일은 노인들의 소득 보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다양한 소득 보전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해고를 하려 하면 해고보상금을 내게 합니다. 해고가 곧 전 국민의 연금보험료 부담을 키우는 행위니까요. 퇴직할 때에도 곧바로 퇴직하는 게 아닙니다. 일정 기간을 두고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하죠. 고령자라고 해서 퇴직 시 결코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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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독일에선 '일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비난을 받는 사람이겠군요.

"사실상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죠.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끔 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또 갖추고 있어요. 일시적으로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수당들을 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보험료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한 제도들입니다. 부과방식의 연금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세대 간 계약'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 결국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에 맞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갖췄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우린 각각의 문제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회는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굴러가야 하니까요."

이처럼 국민연금 재정관리 방식은 적립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 부과방식도 있습니다. 만약 부과방식을 택한다면 우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나눠보려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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