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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김복동' 일본 상영회를 기념하며... 송원근 감독이 일본 관객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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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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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8일,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4년이 되는 날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4주기를 기념하며,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공동으로 영화 ‘김복동’(제작 뉴스타파, 감독 송원근)의 전국 상영회를 기획했습니다. 지난 1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500여 관객이 참석한 상영회가 열린 데 이어 오늘(1월 28일)은 오사카와 고베, 내일(1월 29일)은 시가현에서 상영회가 열리고, 이후 히로시마, 교토, 삿포로 등지에서 순차적으로 상영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일본 상영회를 기념하여, 이 영화를 연출한 송원근 PD가 영화를 관람할 일본의 관객들에게 영화 ‘김복동’의 상영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일본 현지의 상영준비위원회가 제작한 팸플릿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편지가 꼭 일본 관객들 만을 대상으로 한다기 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보여 그 내용을 공개합니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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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동' 포스터
일본 관객들께 드리는 편지... ‘김복동’,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일본에서 영화 ‘김복동’을 관람해주시는 관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연출한 송원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에 계시는 관객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는 날이 오게 되다니,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2019년 8월, 영화 ‘김복동’이 개봉된 이후 햇수로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참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단순히 할머니의 삶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할머니의 기록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이 운동이 지나온 27년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피해자의 아픔이 발생했던 80년 전의 비극적 상황에 집중한 영화가 아닌,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오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뵙기 전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뉴스에서 나오는 정도의 정보만을 토대로 ‘갈등이 심각하다’고만 여길 뿐이었습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을 때도, 당시 뉴스들이 말하는 것처럼 ‘합의가 잘 이뤄졌구나’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한국 내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저처럼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한 가장 아픈 지점은 바로 사람들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김복동’의 제작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이 불과 3개월 가량 남지 않은 2018년 10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제작 초기만 해도, 그저 김복동 할머니의 추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공동으로 기획한 정의기억연대 측으로부터 김복동 할머니의 지난 활동 기록들을 자료로 받아 살펴봤습니다. 동시에 제가 있는 ‘뉴스타파’라는 언론사의 데이터팀에서는 할머니의 지난 활동 기록들을 수집 조사했습니다. 할머니의 활동에서 어느 부분을 집중적으로 주목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할머니의 활동들을 조사하던 저는 영상 속에서 굉장히 특이한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2018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장에서였습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온 재일 조선학교학생들의 모습을 본 할머니가 학생들의 손을 잡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워서 우는 것인지 슬퍼서 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학생들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는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저 학생들 앞에서 왜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갖게 된 첫질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을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학교에 기부하는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2018년 11월 말 경이었습니다. 한국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은데, 왜 재일조선학교일까. 저는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간단히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고, 저는 김복동 할머니에게 ‘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질문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난다”. 그냥 눈물이 난다니. 저는 할머니의 대답을 듣고서도 명확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이러한 마음이며 활동에는, 내가 잘 모르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꼭 제 두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2018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할머니를 눈물짓게 만들었던,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첫 취재를 일본 취재로 정했습니다. 할머니가 눈물지었던 이유를 알아야만 할머니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1월, 일본 교토의 ‘교토 조선중고급학교’를 찾았습니다. 은각사로 들어서는 입구 옆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올라가니, 한눈에도 낡고 열악해 보이는 학교가 나왔습니다. 숲 속에 학교가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 자체로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학교 뒷편에 지난 여름에 입은 수해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방치하고 있다고, 이 학교 교사는 취재진에게 얘기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무상교육 정책에서 배제된 조선학교가 처한 현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복으로된 교복을 입고, 서툰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어떻게든 한국말을 사용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도 한 글자 한 글자 어렵게 한국말을 쓰려고 애쓰는 이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겠구나’ 생각하니, 당시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말기암으로 병원에서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설명하고,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져 갔습니다. 한복으로 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가슴이 시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안간힘을 썼지만, 터져나온 눈물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저의 갑작스런 눈물에 학생들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 앞에 서니 비로소, 할머니의 ‘이상하게 그냥 눈물이 난다’는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바로 제 눈 앞에 한복 교복을 입고 서 있던 학생들이 바로 눈물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 자신처럼 한복을 입은 채, 일본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별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김복동 할머니는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것은 아니었을까. 열여섯의 나이로 전쟁터로 끌려가야만 했던 김복동 할머니에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은 학생들의 모습은, 무엇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비록 지켜지지 못했지만, 너희는 반드시 지켜주겠다. 다시는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할머니의 다짐이 학생들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날로 이 다큐 영화 ‘김복동’을 대하는 제 자세는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느꼈을 마음들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진심’을 다해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당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은 이 영화 ‘김복동’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기도 합니다. 영화 ‘김복동’을 보신 분들은 저의 이 생각의 의미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2019년 여름 제작이 되었고, 상영이 되었습니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도 얻었습니다. 연이어 일본 상영도 계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자꾸만 미뤄졌습니다. 한해 한해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를 ‘미래’라는 이름으로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열리게 된 영화 ‘김복동’의 일본 상영회는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성과입니다. 개봉 후 4년이 지난 지금, 특히나 김복동 할머니의 기일을 추모하며 상영회가 열리게 되어,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비록, 일본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라도 일본 전역에서 상영이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상영회를 준비해주신 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만큼, 한명이라도 더 많은 일본인이 이 영화를 보고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걸어온 그 자취를 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가 최종적이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2015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뤄진 합의였음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를 한다면, 우리는 용서를 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복동 할머니의 마음을 일본의 시민들이 깊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나, 논쟁을 만들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누구를 탓하고 폄훼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김복동’이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타인의 상처까지 보듬게 되는 인권운동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한 주변의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할머니와 함께 교감하고 연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김복동이라는 피해자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영화입니다.

‘김복동’이라는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이 문제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영화 ‘김복동’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기억한다면 이 문제는 기어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보다 많은 일본의 시민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피해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영화 ‘김복동’을 관람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직접 걸음해주신 일본의 관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뉴스타파 송원근 siskra@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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