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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중대한 이야기]수천억 은밀한 유혹…K-반도체 빼돌리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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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편집자주]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글로벌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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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SMIC 정면에서 중국과 각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 사진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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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갑자기 한국 측에서 '팔지 않겠다'는 통보를 보내와 하루아침에 인수가 무산됐습니다."

중국의 한 반도체 기업이 최근 공들여 오던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인수 거래가 수포로 돌아갔다고 했다. 기술 이전과 고용, 설비 등을 포함해 최대 수천억원이 오가는 대형 거래였다. 하지만 부담을 느낀 한국 기업이 방향을 선회하면서 세부 조건에서 합의에 실패했다. 중국측 관계자는 "자세한 무산 사유는 공개할 수 없으나 한국이 중국 기업의 인수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미국의 제재와 정부의 태도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반도체 줴치'(굴기)를 달성하려는 중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에 눈독을 들인다. 미국발 제재가 중국 반도체를 강타하면서 독일·영국 등 주요국의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과 기술이전이 줄줄이 막히자 상대적으로 대비가 느슨한 한국 업체를 겨냥했다. 전현직 임직원에게 접근해 기술 유출 시도를 하는 한편 거액의 자금을 내걸고 기업 인수를 시도하는 '화전양면' 전략으로 한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독일서 거절당한 중국발 인수, 한국行 선택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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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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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반도체 기업·협력사를 노린 인수·기술이전 시도를 크게 늘렸다. 주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부문이나 웨이퍼 생산, D램 등 한국 반도체가 강점을 가진 메모리반도체 부문에 집중했다. 통상적으로 인수나 기술이전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1.5배~2배 이상의 가격을 내세워 설비나 인력, 기술을 중국으로 반입하려는 속셈이다.

중국 반도체가 한국 기업들의 인수에 속도를 내는 것은 미국의 대중 제재로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장비 판매를 금지한 직후부터다. 관영 신화통신은 "미국의 수출통제 남용으로 중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라며 "중국의 정당한 권익과 반도체 시장을 위험으로 이끌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지 업계는 인건비 상승과 반도체 업황 악화로 성장세가 주춤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전을 서두르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분위기다. 중국 2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중 하나인 화훙반도체의 매출총이익률은 지난해 큰 폭으로 급감해 업계 평균 수준인 24.41%를 밑돌았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진출이 줄면서 확실히 반도체 부문이 위축됐다"라며 "해외 기술을 확보해 총력전에 나서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의 해외 기술 확보에는 제동이 걸렸다. 각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개입한 탓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사이그룹의 자회사 실렉스는 독일 반도체 기업 엘모스를 인수하려다 독일 정부로부터 제지당했다. 같은 달 영국 정부는 중국 기업 넥스페리아에게 반도체기업 NWF의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다. 대만 폭스콘은 중국 칭화유니의 지분 8.23%를 취득했다가 대만 정부에게서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다른 국가에 비해 보안 체계가 약한 한국기업을 기술 유출과 인수의 주 타겟으로 삼는다. 중국의 대기업들이 '쩐주'로 나서는 만큼 타 국가보다 자금력이 우위에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중국에서 제시하는 금액은 장비나 설비, 기술 모두 상상하기 힘든 거액"이라며 "자금이 부족한 국내 기업은 유혹에 시달리기 쉽다"라고 말했다.

시도가 워낙 은밀해 제대로 된 현황 파악도 어렵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 기업이 한국에서 합작투자를 명목으로 기술과 제품을 중국으로 가져가려는 활동을 하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실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을 못하고 있다"라며 "중국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한국의 기술을 노린 제의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 없는 한국, 중국 먹잇감 됐다…"지금 바로 대책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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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훙반도체. / 사진 = 화훙반도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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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발 기술 유출 시도와 맞물려 한국 반도체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간첩죄를 적용하는 대만이나, 국외 추방을 불사하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 유출 처벌 수위가 낮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판결은 1심 재판 기준 집행유예가 39.5%에 달했다.

27일부터 네덜란드·일본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이 미국의 대중 제재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절박해진 중국의 '기술 빼오기'는 더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학기술협회는 지난해 대중 제재 직후 보고서를 통해 "인수합병을 수행하는 기업이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점유할 수 있다"며 "중국 반도체 기업은 대규모 통합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내부 인수합병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영준 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과 교수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나 전현직 임직원들이 중국에서 거액을 제시했을 때 현실적으로 이를 거부하기는 무척 어렵다"라며 "중소형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기술유출 방지 대책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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