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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남북 통일의 환상을 버려라 [한국이 갈 길: 원로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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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 상

편집자주

2023년 대한민국 국력은 교차점에 있다. 과거의 성취를 모은 오늘의 국력은 단군 이래 정점에 섰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인구통계, 사회갈등 등 현재의 변화를 추적하면 미래는 암담하다. 성취를 지키고 밝은 미래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원로 5인의 냉정하지만 따뜻한 조언을 5회에 나눠 소개한다.
한국일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미중 사이에서 우리만의 원칙을 갖고 외교를 펼쳐야 하며, 남북 관계에서도 통일에 대한 환상보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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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남산 기슭 사무실에서 만난 송민순(74)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기 이마를 만지며 “앞은 괜찮은데, 뒤통수는 별로인 앞짱구”라고 말했다. 또 “앞짱구인 덕분에 협상 때마다 어제의 나쁜 협상은 잊고 내일 뭐할 건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 북핵 6자회담 등에서 국익을 지켜 내고, 2016년에는 자서전 내용(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을 둘러싸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대립했던 뚝심과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미래 한국의 바람직한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송 전 장관의 조언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경제 발전과 선순환 이뤄낸 한국 외교


_우리 국력이 낮았던 시절, 외교가 경제와 국력 신장을 이끈 사례가 있다면.

“외교와 경제, 군사 이런 것들은 분리가 불가능하다. 안보 외교를 잘 이끌어왔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한미동맹을 관리하지 못했으면 경제가 제대로 됐겠나. 냉전 종식과 더불어 북방외교를 통해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 수교를 제때 한 것도 중요하다. 중국과 베트남은 우리 1, 3대 교역국가가 됐다. 자유무역협정으로 대외 경제의 지평을 확장하고, 중동 남미 아프리카에서 시장을 개척한 것도 어우러져 우리 경제가 커졌다. 외교와 경제의 역량이 동시에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데 외교가 큰 역할을 했다.”

_최근 국제정세는 신냉전, 미중 전략경쟁으로 요약된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어떤 것인가.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 이렇게 선택지를 놓고 볼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으로 외교를 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국가다. 그래서 자유와 인권이 중요한 가치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에 달하므로, 시장경제에 입각한 개방공정무역도 우리의 가치다. 유엔헌장에 입각해서 6·25 전쟁 때 나라를 보전했다. 그만큼 국제적인 질서의 합의가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초강대국이 아니기에, 우리는 다자적 합의를 중시해야 한다.

전략적 선택은 어느 편이 아니라 이런 기초 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입장과 상당히 많이 합치가 되는데, 그렇다고 반드시 미국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미국은 반도체와 관련, 중국과 교역을 억제코자 하는데, 자유무역 원칙과 어긋난다. ‘중국에 뭘 팔라 팔지 말라는 것, 전기차도 미국 것 사라는 것’에 대해 ‘이게 일단 기존의 양자적, 다자적 합의에 안 맞는 거다’라는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 다음 원칙만으로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타협해야 한다. 한국은 그냥 미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원칙을 갖고 하는 나라라는 걸 미국도 중국도 알게 하는 게 필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그런 원칙을 최대한 강조해야 외교의 일관성과 힘이 생긴다."

_우리 내부 정권교체 때문에 외교연속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권이 바뀌어도 방금 제시한 이런 원칙을 지키면 정책의 진폭이 크게 생기지 않는다. 대외 정책이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왔다 갔다 하면 나라 안팎으로 혼란을 가져온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정책을 바꿀 여유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처럼 국제사회에서 투사할 수 있는 힘이 작은 나라가 그렇게 하면 나라의 무게 자체가 떨어진다. 정권이 바뀌면 대외정책까지 다 바꾸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그런 정권의 유혹이 국가적 유혹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만의 원칙으로 미중 사이에 당당한 외교 필요


_현재 미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 비중과 향후 바람직한 비중은.

“안보환경, 가치체계, 경제 관계를 종합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미국 비중이 압도적이다. 미국 비중은 상당히 먼 장래까지 이어질 것이다. 중국이 부상한 것은 현실이지만, 기본적 제약이 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소위 ‘중진국 트랩’에 걸릴 뿐 아니라, 1당 독재에도 많은 장애가 등장한다. 그런데 시진핑이 3기 연임으로 1당 독재에 일인 체제까지 겹치면, 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이 더욱 더디게 된다. 그에 따라 소득성장이 지체되고 사회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중 경쟁을 그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중국 비중을 낮추라는 건 아니다. 중국은 지정학과 경제 관계, 또 황사 문제처럼 우리 생활에 바로 미치는 여러 영향들 때문에 우리에겐 대체되기 어려운 무거운 비중을 갖고 있는 나라다.”

_미국과 중국에 대한 바람직한 우리 대응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강조하고 싶은 건 두 가지다. 우리가 한ㆍ미ㆍ일 협력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한ㆍ미ㆍ일은 제도적 장치가 돼있지는 않다. 반면 한ㆍ중ㆍ일은 서울에 3국 협력사무소를 설치하고 있을 만큼 협력 기반이 제도화되어 있다. 사실 나도 정부에 있을 때 그 바닥을 깔기 위해 집중했다. 한ㆍ미ㆍ일 협력과 한ㆍ중ㆍ일 협력을 병행할 때, 한국 외교의 지평이 열린다. 그런데 지금 한ㆍ중ㆍ일 협력이 죽어있다. (현재 미·일이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과거 미ㆍ중이 참여했던) 아시아태평양 협력(APEC)도 같은 맥락에서 조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볼 때는 한국 뒤에 있는 중국을 보고, 중국은 한국 뒤에 있는 미국과 일본을 본다. 우리는 양쪽을 다 봐야 한다. 양쪽을 같이 보면서 나의 시각과 입지를 넓히는 방식, 즉 광각렌즈 외교가 기본이다.”

_한반도 주변 4강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우리의 4강에 대한 적절한 외교 대응은.

“국가 관계는 상호 필요와 이익의 균형이라는 두 기둥 위에서 이뤄지는 건물과 같은 거다. 4강과의 관계도 서로의 필요에 기초하여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거다. 과거에는 이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한국 자체 무게보다 뒤에 있는 세력, 즉 미국이 볼 때는 중국, 중국이 볼 때는 미국이나 일본에 무게를 뒀는데, 지금은 한국 자체의 무게도 커졌다. 우리가 과거보다 큰 자존감을 갖고 이익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ㆍ미ㆍ일과 한ㆍ중ㆍ일 두 개의 구도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통분모가 된다. 그런데, 한ㆍ중ㆍ일 구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경계하니 한국이 중앙에 서게 된다. 그래서 우리 대응은 두 원이 최대한 겹치게 해서 앞으로 나가는 방향이 돼야 한다.”
한국일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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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수준 낮추고 서두를 필요 없는 대일 관계 정상화


_한국에 대한 중국의 원칙은 뭔가.

“중국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는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대만, 남중국해를 잇는 소위 ‘제1도련’ 안쪽은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카리브해를 사실상의 내해로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 안에 들어있다. 중국은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은 미국의 위상이 유지될 것이고 일본도 군사력 증강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중국 마음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국한테 우리 입장을 밝힐 땐 중국이 같은 자리에서 듣고 있다고 간주하면서 얘기해야 한다. 중국에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국이나 미국 면전에서는 듣기 좋게 에둘러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중국이) ‘미국 얘기 들으면 그게 아니던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이 우리 동맹국이라고 해서 자기 입지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를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 사드 사례에서 이미 봤다.”

_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이번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문제는 징용공 문제와 일본의 수출규제 등은 연결돼선 안 되는 문제가 연결돼있다는 것이다. 분리시켜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이 피해자지원 재단이라는 데서 대위 변제하면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고 셔틀외교를 복원한다는 건 최악의 수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인을 강제 징용한 것은 일본의 잘못이다. ‘배상이 한일협정에 포함됐냐 아니냐’의 논점 이전에 일본이 한국을 강제 지배하면서 생긴 문제라는 역사의 기본 그림이 있다. 설사 국제법적으로 완전 해결됐다고 해석하더라도 그 그림에는 변함이 없다. ‘대법원 판결에 잘못된 게 있으니 우리가 먼저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나가면 역사에서 우리가 쥐고 있던 도덕의 칼자루를 거꾸로 쥐는 게 된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수출규제 등을 연결시킨 것은 일본이다. 일본이 먼저 해제하고 한국이 호응하는 모양이 맞다. 물론 일본 국내 사정도 쉽지 않다. 한일관계는 한국의 어느 대외 관계보다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어서 이성적으로만 할 수 없다. 전 정부에서 과도하게 국내정치를 투영해서 한일관계를 운용했고 그래서 문제가 더 악화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성급하게 그걸 뒤집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정치적 욕구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전 정부의 반대편에서 전 정부와 같은 차원의 실수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성급한 해결욕구보다는 진전의 기대수준을 낮춰야 한다. 그게 오히려 장기적 해결의 시작이란 생각이다.”

_독일, 일본의 ‘무기화되지 않는 무기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바 있다. 우리의 북핵 대응에도 적용될 수 있나.

“독일과 일본은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절체절명의 국가 안보상 필요하면 바로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상태다. 트럼프가 동맹을 무시하는 투로 얘기했을 때 메르켈이 ‘유럽 안보는 유럽 사람의 손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미국이 안보 제공을 빌미로 독일을 위시한 유럽을 휘두르면 독일도 핵무장하겠다는 함의가 깔려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에는 분명히 트럼피즘이 살아있다. 제2의 트럼프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라면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는 우리가 하겠다’고 할 수 있나? 우리는 무기화되지 않은 무기체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부에서는 ‘우리가 핵무기 갖자는 얘기냐’고 하는데, 핵국가와 비핵국가 사이에서 '준핵국가'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은 핵무기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바로 제조할 수 있는 시설과 역량을 갖고 있다. 우리도 NPT 체제 내에서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NPT를 탈퇴할 필요가 없다. 한미 협상을 통해서 우선 우리 원전용 우라늄 농축의 제약부터 풀어야 하는데, 이런 협상을 위해서는 고도의 통치권적 의지가 필요하다. 굉장한 결의를 갖고 해야 한다. 국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이런 장치가 돼 있어야 북한에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대해서도 자기 목소리가 올라간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은 지금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독일이나 일본을 대하지는 않는다. 잘못했다간 그들이 어떻게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철저한 북핵 대비 속에서 통일 환상도 버려야


_북한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북한 정권에 대해 ‘불가능한 정권’이라는 말을 쓰는데, 중국이 존속하는 한 북한체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내 나름의 3P원리를 적용한다. 첫 번째 P는 시민의 힘(people’s power), 그다음은 궁정 쿠데타(palace coup), 그리고 외부 압력(pressure from outside)이다. 세계 역사상 정권붕괴는 이런 3P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북한은 3P 요인이 매우 작다. 외부로부터의 압력만 보더라도, 중국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효과가 미미하다. 북한 정권의 생존이 중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을 샴쌍둥이에 비교하기도 한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붕괴 압력은커녕 붕괴되도록 내버려둘 사정이 아니다. 북한 경제규모는 중국의 500분의 1도 안 된다. 식량 100만 톤 부족분을 채우는데 3억 내지 5억 달러에 불과하다. 지원의 가성비가 매우 크다. 다른 두 개의 P 요인도 개연성이 낮다”

_비현실적 통일 지향보다는 남북이 서로 보통국가로 인정하는 게 낫다고 밝히신 바 있다.

“지금 같은 중국이 있는 한 먼 장래까지 통일은 되기 어렵다. 설사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중국이 개입할 것이다. 사실 남과 북이 계속 통일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통일 가능성은 더 멀어진다. 흡수통일, 적화통일 식의 반목만 늘어난다.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게 방법이다. 그리 되면 통일과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에 이용할 유혹도 줄어들고, 주변국이 우리 통일정책을 이용하는 여지도 축소된다. 별개 나라로 살다 보면 한 나라로 합쳐서 살아도 괜찮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어떤 시점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빼선 안 되는 게 있다.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과 좋은 담장을 쌓고 살 수 없으므로, 미국의 확장억제와 한국의 자체 역량 등으로 균형을 맞추는 게 선행돼야 한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마산고, 서울대 독문학과. 1975년 외무부에 들어가 33년 넘게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90년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에 참여했고,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 협상의 수석대표를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았다. 18대 국회의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통일과 비핵화 협상에 관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저술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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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정리=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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