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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버님 댁에 보일러 말고 인터넷 바꿔드려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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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중년 남자]

조선일보

일러스트=비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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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 놀러가서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보니 초당 100메가가 채 되지 않았다. 어쩐지 느려터졌다 했더니 그 모양이었다. 인터넷 몇 메가짜리 쓰느냐고 물으니 5G라고 한다. “파이브 지냐 오 기가냐”고 물으니 그게 무슨 차이냐고 묻는다. 5세대 이동통신 기술과 5기가바이트를 구분 못할 정도면 묻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

알고 보니 친구는 500메가짜리 인터넷 상품을 쓰고 있었지만 공유기가 그 용량을 감당할 수 없는 구형이어서 인터넷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500메가 인터넷이면 속도가 최소 250메가는 나와야 한다. 분명 랜케이블도 용량 미달일 것 같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충분히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 구닥다리 케이블이었다. 남의 집 거실장 뒤 먼지 구덩이를 뒤져 전선과 공유기를 살펴보는데 친구는 오지랖이 어쩌고 하면서 건드리지 말고 놔두라고 했다.

그 말처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만 비싼 요금 받으면서 공유기와 케이블을 그렇게 방치한 통신사가 괘씸해서 설명해줬다. 인터넷 속도 제대로 뽑으려면 공유기와 케이블을 최신형으로 바꿔야 하고, 전화 한 통 하면 무료로 와서 해준다고 말이다. 그래도 반응이 뜨악하기에 잔소리를 더 했다.

아무리 상수도관에 물이 콸콸 흘러도 수도꼭지가 바늘구멍만 하면 물이 잘 나오겠냐, 인터넷이 펑펑 터지려고 해도 문이 좁아서 들어오지 못한다…. 그제야 친구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약정 끝난 지 몇 년 됐는데 통신사를 바꾸지도 않았고 재약정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무 불만 없이 꼬박꼬박 요금 잘 내는 집에 통신사에서 찾아와 인터넷 잘되느냐고 물을 리 만무하다.

생각보다 이런 집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 약정 3년이 지나 통신사를 바꾸면 40만원가량의 현금을 챙길 수 있고, 같은 회사에 3년 재약정을 해도 비슷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인터넷 바꾸라면서 턱없이 많은 사은품을 제시하는 사기꾼들이 이런 사람을 노린다. 특히 이런 상품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그렇다. 인터넷 속도에 민감하지 않고 TV가 잘 나오니 문제를 못 느끼다가 현금 80만원, 100만원 하는 소리에 엉터리 업체와 계약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보일러 회사는 부모님 댁 보일러 바꿔드리라고 광고하지만 인터넷 회사는 그런 광고를 하지 않는다. 가만 놔두면 재약정 사은 현금도 굳고 공유기며 케이블 교체할 출장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자식들이 알아서 인터넷 속도 측정해 보고 챙겨 드릴 일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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