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라진 200명의 아이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국 망명 신청한 미성년자 200여명 실종
"인신매매·납치" 주장도… 정부 "증거 없다"
한국일보

2021년 9월 프랑스 북부에서 출발한 난민들이 소형 고무보트를 탄 채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 도버=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200명의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세상은 조용했다. 이들이 '국가의 아이들'이 아닌 망명을 신청한 이주 청소년인 탓이다. 보호자도 없이 홀로 영국으로 건너와 정부가 지정한 임시 숙소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실종됐다. 일부는 범죄 조직에 납치됐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100개 이상의 인권·비정부단체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정부는 실종된 이주 아동·청소년에 대한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범죄자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안전하지 않은 숙소'에 망명을 신청한 어린이를 보내선 안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는 임시 숙소가 아닌 지역 당국의 사회 보호 시설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서한은 2021년 이후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미성년자 4,600명 중 440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나왔다. 이들 중 200여 명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2021년 7월부터 홀로 망명을 신청한 미성년자를 임시 숙소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너오는 난민이 점차 늘자 영국은 호스텔이나 아파트 등 임시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까다로워지는 망명 절차에 임시 숙소에서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며 실종 사례가 생겨났다.

일각에서는 사라진 청소년들이 인신매매와 착취 위험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가디언지의 일요판 '옵서버'는 내부 고발자를 통해 "사라진 망명 신청 어린이들은 범죄 조직에 납치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동당 소속 이베트 쿠퍼는 "납치된 청소년들은 대마초 농장으로 팔려 가거나 최악의 경우 성매매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망명 신청 어린이의 실종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는다고 옵서버지는 보도했다.
한국일보

로버트 젠릭 영국 이민부 장관이 17일(현지시간) 런던의 총리 집무실 다우닝가에서 열린 각료회의 참석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된 '납치설'에 선을 그었다. 로버트 젠릭 이민부 장관은 의회에서 "상황은 걱정스럽지만, 납치의 증거가 없다"라면서 "(실종을 막으려)미성년자를 가둬두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18세 미만 망명 신청자들의 호텔 안팎 움직임을 관찰하고, 시(市) 소속 사회복지사도 파견하고 있다"며 정부가 보호 조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해명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사안을 소홀히 다룬다는 지적이다. 임시 숙소가 있는 지역구의 노동당 의원 피터 카일은 "불편한 진실은 의회에 있는 우리와 관련된 아이가 한 명이라도 실종된다면 세상이 멈출 것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지역구에서는 한 아이가 실종되고 5명, 50명, 70명으로 실종자가 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