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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부처간 조율조차 않고 발표했다 철회…‘비동의 강간죄’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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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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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법무부가 “계획이 없다”고 반박해 9시간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여성단체는 27일 성명을 내어 “양성평등기본계획 승인하고 뒤집은 법무부, 국제협약 권고대로 ‘비동의 강간죄’를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22개 단체는 27일 성명을 내어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은 당일인 1월26일 양성평등위원회에서 이미 의결된 바 있다. 법무부 장관은 양성평등기본법 제11조와 시행령 제8조에 의거한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라며 “장관이 위원으로 소속된 위원회에서 의결한 계획을 법무부가 나서서 당일 반대하고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양성평등기본법은 성평등 국가책무를 담고 범부처의 책무를 체계화한 법인데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나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단체는 “비동의 강간죄는 20대 국회 시기, 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발의하여 5개 정당 10개 국회의원실이 대표발의했던 법안”이라며 “한국이 비준하고 있는 국제규약도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권고했다”고 밝혔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2006년 제2차, 2017년 제3·4·5차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제7차, 2018년 제8차 최종견해에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해 형법 제297조(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의 강간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가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자, 여가부는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 포함된 비동의 간음죄 개정검토와 관련하여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비동의 강간죄는) 법무부 과제이고, 법무부가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알려와 ‘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라며 “법무부가 계획이 없다고 해서 철회했다”고 말했다.

여가부쪽 설명에 따르면, 법무부는 애초 여가부에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하여 성폭력 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법무부는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였다고 밝혔는데, 여가부는 이를 ‘비동의 강간죄’를 추진하겠다는 쪽으로의 검토인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형법 297조는 폭행·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정도’에 해당해야 강간죄로 인정하는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폭행·협박’ 규정이 성폭력 피해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직장 내 직위를 이용하거나, 술·약물을 이용하거나, 가족이 있는 집이라는 장소를 이용하거나, 친족이 가해자인 경우 ‘폭행·협박’이 없어도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했다. 지난 2019년 1~3월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성폭력상담소에 강간 사례 분석 결과를 보면,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가 71.4%에 이른다.

비동의 강간죄에 반대하는 쪽은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처벌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를 구성요건으로 채택한 해외 법을 살펴봐도, 피해자의 의사만이 아니라 이를 입증하는 과정과 절차에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스웨덴, 독일,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미국(11개 주)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또는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해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 사례들을 처벌하고 있다고 한다. 비동의 강간죄가 입증 책임을 피의자에게 전가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형사 재판은 범죄 사실의 입장을 검사(피해자 쪽)에서 하고, 죄가 증명될 수 있는 입증 사실이 있어야 기소되고 처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호도하며 자기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여성계 주장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6일 페이스북에 “뭐? 비동간? (비동의 강간죄)”라는 짧은 글을 남기며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이 법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무고 당할 가능성도 있다. 성관계 시 ‘예’, ‘아니오’라는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성인남녀를 평가절하한다”고 썼다. 김혜정 소장은 “해당 정치인들의 발언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위치에 두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 “국제표준이 된 이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에서 말하면 위험하다.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면, 무고한 남성의 인생을 망치는 ‘꽃뱀’이 늘어난다는 판타지 때문이다. 그 판타지를 믿는 일부 남성들의 키보드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흠씬 두들겨 맞아야만 강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낡은 형법이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동의하지 않았을 때 관계를 강제당한,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썼다. 류 의원은 2020년 비동의 강간죄를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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