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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제완의 논점] '설득' 문턱 못 넘는 전장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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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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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 악플이 낫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3호선 탑승 시위를 진행하던 지난해 4월께 당시 20대였던 주변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말은 확실히 매일매일 머리에 꽂힌다"는 것이다.

해를 넘겨 30대가 된 그들은 "뭘 하자는 것이냐" "장애인의 자유를 위해서 내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영 딴 얘기를 하고 있다.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진다면 자신의 불편함은 감수하겠다던 그들은 1년 새 왜 등을 돌렸을까. 30대가 된 것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전장연과 서울시의 갈등, 줄다리기를 바라보면서 '시위의 비효율성'이 지켜보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찰학 사전은 '시위'를 "다중이 집합, 공동의사를 표시해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로 정의했다. '효율적 시위'라고 하면 불특정 다수를 빠른 시간 안에 '설득'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지난해 초까지의 전장연 탑승 시위는 웬만큼 성공한 시위로 볼 수 있다. 서울 시민들이 지하철에 가장 많이 몰리는 출근길에 진행한 탑승 시위로 전장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그다음 단계인 '설득'의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한 듯하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가 발간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인식'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80%는 "장애인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저상버스 확대 도입, 시외이동권 보장체계 마련 등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전장연의 주요 주장에도 각각 88%, 85%가 동의했다. 하지만 전장연 시위에 공감한다는 비율로 들어서면 61%로 그 수치가 낮아졌다. 적어도 20% 정도의 응답자에게는 전장연의 시위 방식이 장애인 이동권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부터는 장애인 이동권에 더해 '장애인 권리예산&권리입법 보장 촉구' 선전전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시위의 목적성까지 흐려졌다. 이 시점부터 "뭘 해달라는 것이냐"는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장애인 권리예산에는 탈시설, 장애인 활동지원, 평생교육지원 예산이 포함된다. 이름만 들어서 무슨 예산인지 알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종류와 사업도 많으니, 설득을 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서울 지하철에서 시위를 진행하는 당위성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비효율적 시위'의 책임을 주최자에게만 묻기는 어렵다. 해결책을 제시해 시위를 효율적으로 끝맺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에 달려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도 과격한 방식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벌어졌다. 1978년 콜로라도주 덴버 도심시위에서 시작해 10여 년간 '대중교통권을 원하는 미국 장애인 모임(ADAPT)'의 시위가 이어졌다. 리프트가 설치된 버스 도입을 요구한 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계단을 팔로만 기어오르기도 했다. 시위가 끝을 맺은 것은 1990년 미국 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법안을 입안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달 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전장연의 단독 면담이 성사됐다. 사진 찍기용 면담보다는 10여 년 이어져 온 탑승 시위의 효율적 종결을 보여주는 면담이길 바란다.

[박제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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