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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윤 대통령 “남쪽 체제로 통일이 상식” 흡수통일론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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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도 인권 실상 알게 해야”

통일부, 2023년 대통령 업무보고

‘강 대 강’ 압박 속 실효성 떨어지고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 찾기 어려워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올해 대북 압박과 민간 접촉 등을 병행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칭 ‘신통일미래구상’이라는 중장기적인 남북관계 구상도 내놓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강 대 강’ 대북 정책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워 진정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윤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통일부는 ‘올바른 남북관계 구현’과 ‘통일미래 준비’를 핵심 축으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정치·군사·외교·경제적 압박을 강화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사후 브리핑에서 “민생을 외면하고 도발을 계속하며 잘못된 길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밖에 없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북한에 제안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의 이행 계획도 구체화한다.

남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접촉면 확대에도 나선다. 통일부는 “민간의 대북 접촉 재개를 지원하고 국제기구 등을 통한 (북한 당국과의) 직·간접적인 접촉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범위로 접촉면을 넓혀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며 “실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등에서 (대북 접촉이) 진행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남북 정전선언 70주년을 맞아 통일부 장관 직속으로 민관 합동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적인 ‘신통일미래구상(가칭)’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권 장관은 “미·중 전략경쟁 등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북핵 등으로 남북관계 상황도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들을 세심히 반영해 중장기 통일·외교·안보 전략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신문·방송을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차원에서 노동신문 공개가 우선 추진된다. 노동신문은 북한 체제를 통치하는 조선노동당의 기관지다. 그간 특수자료 취급 기관에서 제한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지역 통일관 등으로 열람 장소를 확대한다. 인터넷을 통한 접근은 계속 제한된다. 현 정부 국정과제인 북한인권 개선 지원과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지원은 강화된다.

하지만 현재 극도의 ‘강 대 강’ 한반도 정세 속에서 압박 강화를 통해 북한과 대화·교류·협력을 추진하는 통일부 정책의 실효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는 미국·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적대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대북정책 주도권은 국방부·외교부로 넘어갔다.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북한은 핵무력 강화에 몰두하며 남한·미국의 대화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나 현 상태에서 통일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통일부의 남북관계 개선 보고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윤 대통령은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은 “통일은 갑자기 찾아온다”면서 “그러나 준비된 경우에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 방식과 관련해서는 “더 나은 쪽으로 돼야 되지 않겠나”라며 “남쪽이 훨씬 잘 산다면 남쪽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 게 상식”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남한 체제 중심의 흡수통일론을 밝힌 것이어서 북한 입장에선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북한 인권 실상과 정치·사회 실상을 알고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실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대북 전단살포 또는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이 (대화 제안에) 호응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하지 않고 정책적 입장만 밝히는 건 문제가 있다”며 “북한이 (대화 제안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중장기적인 ‘통일미래 준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당장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 정부에서 역할이 제한된 통일부의 현실은 업무보고 형식에서도 드러났다. 통일부는 통상 외교부·국방부와 함께 외교안보 부처 차원에서 업무보고를 해왔지만, 올해는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와 묶여 진행됐다. 통일부 새해 업무보고가 외교안보 부처와 별도로 열리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이후 11년만이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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