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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단독]“경찰이 조폭 도와 감금”···수사기록과 재판으로 본 유착·동선조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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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사기록에 첨부된 허씨와 강씨 조직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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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배를 도와 민간인을 감금했다는 혐의로 수사받던 경찰 간부가 당일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위치기록 등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해당 간부가 지역 조폭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대역을 내세워 ‘피의자 바꿔치기’까지 했다고 봤으나 검찰은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오히려 감금 피해자를 무고죄로 기소했는데, 이 피해자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6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5531쪽 분량의 검·경 수사기록을 보면 군납업자 정모씨와 경남 토착 조폭 허모씨, 부두목 강모씨는 2019년 9월 군납업체 직원 노모씨를 빈 사무실에 앉힌 뒤 횡령 사실을 자백하라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노씨의 휴대전화와 가방을 빼앗은 뒤 노씨 가족을 언급하며 협박했고, 노씨는 이튿날에나 풀려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현직 경찰 광역수사대 소속 경감 A씨가 부두목 강씨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취조하듯 고소장을 작성했다는 게 노씨의 주장이다.

노씨는 몇 달 뒤 자신의 피해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A경감을 수사해 2020년 6월4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오히려 피해자 노씨를 무고로 기소했고, 노씨는 1심에서 1년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13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상황이 역전됐다. 재판부는 노씨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A경감이 감금 현장에 방문했으며 “(노씨가)사무실에서 A경감을 보았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라고 했다. 또 노씨 주장대로 A경감이 조폭 일당의 사주대로 고소장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A경감 증거 인멸했나···휴대전화 폐기하고 위치정보 조작


A경감이 노씨가 감금됐던 당시의 위치정보를 조작한 사실도 재판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A경감이 감금 현장 압수수색 후인 2019년 12월25일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밝혔다. 또 A경감이 구글 타임라인, 타임라인 만들기 등을 수차례 검색하고 감금 당시의 타임라인을 조회했으며 감금 다음날인 9월21일의 위치를 업데이트한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경감은 타임라인을 업데이트한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 불리한 증거가 되리라는 점을 알았음에도 업데이트를 했다”고 덧붙였다.

A경감의 증거인멸 정황은 검찰 송치 당시 경찰 수사결과보고서에도 담겨 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A경감이 2019년 12월25일 휴대전화를 교체한 뒤 세 차례 기기를 초기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A경감은 수사관에게 “(감금 당시의)알리바이를 증명할 자료가 있다”면서 “구글 타임라인에 내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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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결과 확인된 A경감의 구글 타임라인. 감금 당일 기록이 수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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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타임라인은 조작된 것이었다. 구글 타임라인은 실시간 위치 기록을 저장하는 서비스지만 장소·시간을 사용자 임의로 수정할 수 있다. 포렌식 결과 A경감은 구글 타임라인 수정 방법을 38회 검색한 뒤 9월21일자 타임라인을 업데이트했다. 이에 경찰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일률적으로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된다”며 “거짓으로 진술하기 위해 수정된 타임라인 제출 의사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A경감은 현장에 간 경찰이 자신이 아니라 퇴직 경찰 B씨라고 주장하며 ‘피의자 바꿔치기’를 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경찰은 수사기록에 “A경감은 수사를 받게 되면 경찰직을 유지하지 못하고 처벌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B씨에게 범행한 당사자라고 허위 진술하도록 교사했다”고 썼다. B씨 차량의 블랙박스에 이를 뒷받침할 녹취가 담긴 점, B씨가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노씨를 알아보지 못한 점, 노씨가 B씨가 아닌 A경감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전직 경찰관인 B씨와 A경감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B씨가 고소장을 작성한 것이 진실인지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폭 잡는 경찰이 조폭과 148회 통화···조의금 명단에도


당시 A경감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A경감이 허씨와 강씨 등 토착 조폭 세력과 유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A경감은 2019년 6월20일부터 12월9일까지 두목 허씨와 55회, 강씨와 93회 통화했다. 감금 당일 A경감을 현장에 부른 것도 강씨였다. 경찰은 “A경관은 조폭으로 지칭되는 허씨와 강씨와 상당한 친분이 있다”면서 “처음부터 강씨 등의 부탁을 받고 고소장을 작성할 목적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경감은 과거 경남지방경찰청 광수대 소속으로 조직폭력배 10개 조직 141명을 검거해 특진한 이력이 있다. 경찰 수사관은 A경감이 소속된 경남청이 이미 허씨의 조직을 한 차례 수사한 점을 들어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나 A경감은 “몰랐다”며 부인했다. A경감은 같은 해 허씨의 모친이 사망했을 때도 10만원 상당의 조의금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조의금 리스트엔 A경감을 포함해 진주경찰서 15명, 경남경찰청 4명, 의령경찰서 3명, 산청경찰서 2명, 김해경찰서 1명, 남해경찰서 1명 등 경찰관 총 26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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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을 입고 군사법원 법대에 앉아 있는 진주 동방파 두목 허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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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찰은 2020년 11월29일 A경감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노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노씨는 “검사가 반말을 하면서 내일 구속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면서 “검사와 변호사가 30분간 따로 얘기를 하더니 A경감은 빼고 진술하는 게 좋다고 종용해 진술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말대로 했다가 무고로 기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무죄로 (구치소에서) 풀려날 때까지 114일을 눈물로 지샜다”고 말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노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확정됐다.

재판부 판단에 대해 A경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판결문은 잘못된 것”이라며 “나는 노씨를 직접 마주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타임라인 조작에 대해선 “(감금이 시작된)20일이 아닌 21일의 타임라인에 손을 댄 것이기 때문에 범행하고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조폭과의 유착 관계에 대해선 “아는 사람 중에 깡패든 조폭이든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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