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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인터뷰] 지성배 벤처캐피탈협회장 “정부 모태펀드 예산 삭감 아쉬워…벤처투자 세제혜택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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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벤처투자 시장은 역대급 활황을 맞았다. 저금리 기조에 시장엔 돈이 풍부해졌고, 투자자들은 은행 이자로는 성이 차지 않아 높은 수익률을 찾아 헤맸다. 주식은 물론 가상화폐 시장까지 들썩였다. 벤처투자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하반기 시장이 주춤했지만, 벤처펀드 결성액은 사상 처음으로 10조를 돌파했다.

그러나 시장은 금리 인상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풍부해진 자금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제까지 흘렀고, 물가 상승이 위험 수준까지 다다랐다. 결국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1년간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4.5%까지 올랐고, 한국은행도 이에 발맞춰 금리를 3.5%까지 끌어올렸다. 원금 손실 없이 이자를 5%나 주는 세상이 오자 자금을 대주던 ‘큰손’들은 이전만큼 벤처시장을 찾지 않았다.

조선비즈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한국벤처캐피탈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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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부는 올해부터 벤처 투자 시장의 젖줄로 불리는 모태펀드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펀드다. 정부가 일정액을 출자하면 이를 마중물 삼아 민간자금도 투자받아 벤처펀드가 만들어진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의 벤처투자 시장을 활성화한다며 올해 모태펀드 예산을 지난해보다 40% 삭감했다. 지성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런 격동기에 벤처캐피탈협회장을 맡았다. 민간 벤처투자 시장 활성화를 취임 일성으로 내건 그였지만, 모태펀드 예산 삭감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업계 목소리를 모아 정부를 설득해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를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민간 자본을 충분히 끌어들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급격히 동력을 잃어버린 시장에 지친 업계 종사자들에게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를 주문했다. 소처럼 묵묵히 걷되, 호랑이 눈으로 기회를 엿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위기를 말하지만, 그는 벤처시장이 2000년 닷컴 버블처럼 무너져내리진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 협회장은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달 IMM인베스트먼트 수장으로 돌아간다. 조선비즈는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그를 만나 협회를 떠나기 전 마지막 소회에 대해 들었다.

2년간 벤처캐피탈협회를 이끌었다. 협회장으로서 잘한 점을 꼽아보자면.

“재임 동안 벤처투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제가 잘했다기보단 경기가 좋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더뎌졌지만, 2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역대 최고 펀드 결성액은 물론 역대 최고 벤처 투자액까지 달성했다. 유니콘 기업들도 많아졌다.

취임 일성 중 하나가 민간 중심 벤처투자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필요성을 느끼고 함께 움직여줬다. 민간 펀드가 활성화되려면 민간 자금이 시장에 들어와야 한다. 앞으로는 내국법인이 민간 모펀드를 통해 벤처기업 등에 투자할 때 벤처기업 투자금의 5%에 더해 증가분의 3%까지 세액공제할 수 있게 됐다.”

아쉬웠던 점도 있을 것 같다.

“단연 모태펀드 예산 삭감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업계가 침체를 겪는 가운데 올해부터 모태펀드 예산이 40%가량 줄었다. 정부 입장에서 (예산 삭감을 상쇄하기 위해) 민간 자본 유입을 위한 인센티브를 마련해줬지만,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일반 법인의 양도 차익 비과세 혜택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도입됐다면 더 강한 유인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투자기법 가운데 조건부 지분 전환계약(컨버터블 노트)과 투자 조건부 융자제도도 아직이다. 벤처펀드에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인수 금융을 조달할 수 있는 부분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은 한국보다 벤처시장이 활성화돼있다고 평가받는다. 제도적 차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벤처투자 생태계는 본격 시작된 지 20년 정도다. 2000년쯤엔 지금과 같은 벤처투자는 활발하지 않았다. 대부분 일반 금융기관에서 벤처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형태였다. 일반인들도 벤처투자를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인식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제도 보완도 따라줘야 한다. 민간 중심 벤처투자 시장을 위해선 세제 혜택이 가장 핵심이다. 이를 통해 대기업 유보금을 벤처투자 쪽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협회장을 하기 전과 후에 어떤 점이 달라졌나.

“봉사직에 있다 보니 이 업계를 더 사랑하게 됐다.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벤처투자라는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일들을 거치다 보니 업계를 바라보는 제 시각이 더 애정 어리게 바뀌었다.

제가 몸담은 IMM인베스트먼트는 대형사인 만큼 사실 모태펀드 영향력이 크진 않다. 업계 전체를 보면 다르다. 모태펀드는 중소형사와 신생 벤처캐피탈(VC)에게 중요한 자금 공급원이다.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국회의원을 비롯해 많은 인사를 만나 노력했다.

일례로 유한책임회사(LLC)형 벤처캐피탈의 관리보수 부가가치세 면세 여부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다. 협회를 중심으로 감사원과 기획재정부가 잘 합의해서 마무리하도록 도왔다.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협회 차원에서는 중요한일이었다.”

VC 규모 별로도 애로사항이 다를 것 같다.

“신생 혹은 소형 VC들은 돈 모으기가 가장 어렵다. 투자 성적(트렉 레코드)이 없어 자금을 위탁받기 어려운 구조다. VC업 본질은 펀딩이다. 투자는 상대적으로 쉽다. 펀딩이 안 되면 투자하고 싶어도 못 한다. 이런 VC들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모태펀드와도 연결하고, 그 외에 산업은행 등 공공 자금을 끌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대형사들이나 중형사들은 복수의결권(대주주가 가진 지분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 허용을 원한다. 쿠팡이 미국에서 상장한 것도 복수의결권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기업이 스케일업을 앞두고 큰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복수의결권 없이 대규모 자금을 받으면 대주주 지분이 너무 희석된다. 창업자들이 투자받고 싶어도 지분율 희석을 우려한다. 복수의결권 제도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VC 입장에서도 창업자가 기회를 놓치는 걸 바라만 봐야 한다.”

지금의 위기가 언제와 비슷하다고 보나.

“2000년 닷컴 버블이 꺼지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만 그때처럼 기업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환경 자체가 많이 변했다. 한국도 20여 년간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능력과 도덕성, 기업가정신 등이 급성장했다. VC 심사역 역량도 마찬가지다. VC에게 투자받은 기업이라면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들이다. 과거엔 그런 심사 능력이 부족했다. 지금은 기초 체력 자체가 튼튼해졌다. 잠시 주춤할 수 있지만, 닷컴 버블 때처럼 붕괴되는 시장은 아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위기 속 투자를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나.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를 갖고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 말하고 싶다. 벤처 투자하는 사람이나 벤처기업 창업자들에게 이 길은 아주 길고 지난하다. 지치지 않고 소처럼 나아가는 자세와 함께 호랑이 눈으로 먹잇감이 나타나면 채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지루해하지도, 너무 힘들어하지도, 너무 지치지도 말라고 벤처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차기 협회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협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간 주도 벤처투자 생태계 환경 조성이다. 성숙기로 가고 있지만, 차기 회장께서 이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공고히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업계로 민간 자금이 많이 유입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셨으면 좋겠다.”

지성배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지난 2021년 2월 제14대 VC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삼일회계법인과 CKD창업투자를 거쳐 국내 최대 VC 중 하나인 IMM인베스트먼트를 이끄는 벤처투자 전문가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쿠팡, 우아한형제들, 크래프톤, 무신사 등 다양한 기업에 투자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키워냈다.

오귀환 기자(o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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