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日 기업 아닌 제3자 변제가 피해자 동의 없이 불가능한 이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배상 판결의 이행을 두고 윤석열 정부가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한국의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이 제3자의 기금을 모아 변제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원고이자 이 사건의 채권자인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같은 변제는 사실상 어렵다는 법적 해석이 나왔다.

26일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김홍걸 국회의원이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조정식, 김경협, 홍익표, 박정, 이재정, 윤영덕, 이수진(비례)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 부위원장 박래형 변호사는 5가지의 쟁점을 제시하며 이같은 해석을 내놨다.

1. 제3자 변제, 당사자 동의 없어도 가능한가? 

외교부는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서 원고들이 받은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피고 기업이 아닌, 제3자의 변제가 가능한 법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득을 본 한국 및 일본 기업과 민간 등에서 기금을 모아 판결금을 원고인 피해자에게 지급해 주자는 제안이다. 정부가 이러한 안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피고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몰수해 현금으로 만들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강제집행을 할 경우 일본이 크게 반발하여 한일 관계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법 469조에 따르면 채무는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따라서 피고 기업이 아닌 제3자가 변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같은 조항에는 "① 채무의 성질 또는 ②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어, 당사자인 피해자가 반대할 경우 제3자 변제는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또 하나의 조건인 '채무의 성질'이 이번 사건에도 대입될 수 있을지에 대해 박래형 변호사는 '일신전속적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때'가 무엇인지를 두고 쟁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신전속적 급부는 '채무자 자신에 의한 급부가 아니면 채무의 내용에 좋은 이행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며 "보통 금전으로 지급되는 경우에 대하여 일신전속적 급부를 목적으로 한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이번과 같은 판결금은 그 채무의 성질 상 반드시 특정인이 지급 주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대법원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는데 이는 단순히 사인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일항쟁기에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인 강제동원에 기한 문제"라며 "이러한 경우에는 '가해 기업에 의하여 변제가 이루'어져야 채무의 내용에 좋은 이행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 변호사는 "즉, 이러한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제3자의) 변제는 (당사자 의사표시뿐만 아니라) '채무의 성질'에 의하여서도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라고 보아야 국민들의 법 감정과 일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채무의 성질 측면에서도 피고기업이 아닌 제3자 변제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그는 이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2. 병존적 채무인수는 채권자 동의 없이 가능하다?  

정부는 제3자가 피고 기업과 함께 채무를 부담하는 '병존적 채무인수'의 경우 채권자인 원고의 승낙 없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채권자의 승낙이 없어도 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의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한다. 하지만 이 계약이 제3자인 채권자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면 법률의 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즉 피고 기업이 아닌 제3자가 피고 기업과 함께 채무를 인수하는 계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이것이 곧 실제 채권자인 원고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채무자와 인수인 간의 계약이 채권자가 직접 채권을 취득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채무자와 인수인 외의 제3자를 위한 계약"이라며 이같은 경우 민법 539조에 따라 "채권자의 수익의 의사표시가 있어야만 병존적 채무인수가 이뤄진다"고 해석했다.

민법 규정은 "제3자의 권리는 그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계약의 이익을 받을 의사 표시한 때에 생긴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병존적 채무인수가 채권자가 인수인에 대해 직접 채권을 갖게 되는 경우라면 채권자인 원고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박 변호사는 "채권자가 인수인에 대하여 직접 채권을 취득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는 제3자 변제에서 본 이행인수일 뿐이고 병존적 채무인수는 아니다"라며 결국 당사자인 원고의 반대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 성립이 어렵다고 봤다.

프레시안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 채권자가 수익 표시를 하지 않았을 때도 공탁 가능한가?    

12일 정부 주최 공개토론회에서는 피해자인 원고가 제3자가 지급하는 판결금을 수령하겠다는 '수익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이 금액을 공탁할 수 있다는 방안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피해자인) 채권자가 수익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와 인수인간의 권리 의무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권리의무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변제를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공탁도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공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변제공탁의 경우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려고 해도 채권자가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에 가능하다면서, 피고 기업이 아니면서 채무에 같이 참여한 제3자의 경우 채무자가 아닌, 채무를 함께 인수한 ‘인수인’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즉 채권자인 원고가 채무자의 변제가 아니라 인수인의 변제를 거절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변제공탁이 성립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권리 의무 관계에 있는 채무자가 아닌 제3자가 공탁하는 방법은 현생 법률 제도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4. 법정채권이면 제3자 변제 가능하다?

지난 12일 열린 공개토론회에 참여한 최우균 변호사는 제3자 변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아직 판례는 없는데 이 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의해 원고가 채권을 얻게 된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사적자치 원칙의 적용여지가 없다"며 채권자가 제3자 변제를 원하지 않아도 변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당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으나, 위 설명에서 들고 있는 법정채권이 '법률규정에 의한 채권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채권관계는 사무관리, 부당이득, 불법행위"라면서 피해자인 원고가 대법원을 통해 얻게 된 채권은 "이 (세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는 "그 외에 법률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법정채권이 된다'고 정하고 있는 규정이 있지는 않으므로, 위와 같이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변제가 가능하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논리 구조의 허점을 지적했다.

프레시안

▲17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역사를 지키는 광주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도록 하는 정부 배상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 제3자가 판결금 지급하면 강제집행 절차 정지 가능?

정부의 구상대로 실제 제3자가 채무를 지급하더라도, 피고인 일본 기업의 한국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왔다.

박 변호사는 "채권자의 강제집행절차가 정지되기 위해서는 민사집행법 49조에 따라 ① 채무자가 재판정본을 받아서 ② 그 재판 정본을 집행기관에 제출하여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이 사안의 경우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채권자인 피해자를 상대로 재판을 제기하여 강제집행 정지 결정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받아서 이를 집행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또는 조문에 따르면 채권자로부터 강제집행을 정지한다는 승낙 증서 등을 받아 집행 기관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피고 기업이 아닌 제3자를 채무자가 아니라 인수인으로 해석할 경우 이러한 조항의 적용이 어려워 진다. 박 변호사는 "인수인이 채권자에게 돈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변제한 것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강제집행을 정지하는 결정 자체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라고 하면, 제3자가 지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하여 채권자의 승낙이 없는 이상 강제집행 정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고 예측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