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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통계청장 출장간새 자료 빼낼 규정 급조...文정부 통계조작 의혹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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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원의 뉴스 저격]

비공개 자료, ‘소주성 靑수석’이 1호로 받아가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현재 감사원은 실지감사(현장감사)를 마쳤고, 최근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 수석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청와대 고위급 인사들도 잇따라 부를 방침이다.

이번 감사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일자리,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통계 마사지’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특히 감사원은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청와대·통계청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통계 재가공’을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통계청장이 돌연 교체된 것도 같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통계청 돌연 비공개 자료 예외 규정 신설

통계 조작 의혹은 2018년 3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통계청은 당시 외부 유출이 금지된 비공개 통계자료가 손쉽게 다른 기관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이 과정에서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3월 4~12일 황 청장이 UN통계위원회 참석차 해외 출장을 간 사이 최성욱 통계청 차장이 ‘대리 결재’로 비공개 자료 예외 규정 신설을 허용했다. 국회에서 ‘통계청장 패싱’에 대해서 추궁하자 당시 통계청 담당자는 “당시 제가 심신 미약 상태여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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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예외 조항으로 맨 먼저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받아간 ‘1호 요청자’는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그해 5월 24일 발표된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로 문재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빈부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졌다는 취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대한 ‘소주성 효과’가 거꾸로 나온 것이다. 그러자 ‘소주성 설계자’ 홍장표 수석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홍 수석은 가계동향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튿날인 5월 25일에 가구의 식별정보까지 포함된 마이크로데이터를 통계청에 ‘구두(口頭)’로 요청했다. 당시 비공개 자료 요청자는 홍 수석이었지만, 수신자는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 연구실장으로 통계청 기록에 남아 있다.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은 강신욱 실장 등은 즉각 ‘통계 재가공’에 착수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실직자는 제외하고 새로운 수치를 만들어 냈다. ‘재가공 보고서’는 5월 27일 청와대에 올라갔다.

나흘 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재가공 보고서’ 강신욱, 통계청장 발탁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은 청와대 지시로 비공개 자료가 빠져나갔고, 이것이 강신욱 실장 등에 의해 재가공되었다는 내용을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8월 26일, 문 대통령은 황 청장을 중도 경질하고, 강신욱 보사연 연구실장을 새 통계청장으로 발탁했다. 강 실장이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아 재가공 보고서를 만든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경질된 황 통계청장은 8월 27일 열린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울먹였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도 했다. 같은 날 강 신임 통계청장은 경제장관회의에 나가 “장관님들 정책에 좋은 통계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통계청장 교체 이후 소득 통계가 개선된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청장 말대로 “좋은 통계로 보답”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작이 있었냐는 것이다. 실제 황 전 청장 재임 시절 발표된 통계청의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은 5.95배로 나왔는데, 강신욱 전 청장으로 교체된 이후 2019년 1분기 5분위 배율은 5.8배로 다소 나아진 까닭이다.

비정규직 역설에 부딪힌 ‘눈속임 일자리’

문재인 정부는 악화된 경제지표를 만회하기 위해서 고용 분야에 막대한 재정을 퍼부었다. 2018년 10월·12월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561억4600만원을 지출 의결해서 초단기 일자리 1만8859개를 양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천재지변과 같은 비상 상황에 써야 하는 ‘국가 비상금(예비비)’을 퍼부어서 덩굴 뽑기, 철새 감시, 빈 강의실 불 끄기 같은 ‘눈속임 일자리’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예비비를 일자리에 쓴 것은 최근 10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예산을 퍼부어서 만든 공공일자리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또 다른 역설에 부딪혔다. 2019년 10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전년 대비 86만7000명 폭증한 748만1000명으로 드러난 것이다.

핵심 정책인 ‘비정규직 제로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이터가 제시되자 문재인 정권에 또 한 번 비상이 걸렸다. 황덕순 당시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통계청 발표 이튿날인 10월 30일 친문(親文) 성향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과거 (조사의) 질문이라면 정규직으로 조사됐을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비정규직이 폭증한 것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은 다른 통계의 결과들도 정부가 갖고 있다”며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과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질문지는 전년도와 동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 차인 2021년엔 사상 처음으로 800만명을 넘어서면서 더 늘어났다.

현재 감사원은 황수경·강신욱 전 통계청장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다. 또 청와대가 국가통계 왜곡에 개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통계 왜곡은 정권이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면서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봐도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소주성·탈원전·최저임금 인상을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신앙으로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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