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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유와 성찰] ‘빌드업’ 축구와 한국 정치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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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의 질곡을 벗고 축제로 빠져들게 한 축구 국가대표팀에 감사한 마음이다. 투지와 끈기로 경기를 이끄는 모습은 마치 우리 백성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투영된 것 같다. 16강까지 이끈 전술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다. 혼연일체가 된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가 공을 주고받고, 상대 진영에서 틈을 만들어 골을 넣는 모습은 한 편의 예술작품을 빚는 느낌이다. 이를 위해서는 튼튼한 기본기는 물론 정확한 판단력, 강인한 체력, 상대팀의 능력에 대응하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치는 팀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것 같다.

경향신문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A학점에 근접한 국가대표팀에 비해 올해 한국 정치는 어떤 학점을 받을 수 있을까. 평가를 위해 먼저 그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 A학점은 도치(道治)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선을 물에 비유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정치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툼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고 한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는 모두 바다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바다는 거부하거나 싫증 내지 않는다. 세상은 시비와 이해의 무덤이다. 이 모든 분열을 가슴에 안아 하나로 만드는 정치야말로 도(道)의 정치다. 바다는 만물의 제왕이다. 자연에도 정치가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정치가 아니다. 도의 정치가는 분별과 간택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하여 무위의 자연이 모든 만물을 기르듯이 자신의 품 안에서 백성이 안심과 행복을 얻는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누가 정치가인가 묻지 않는다.

B학점의 정치는 덕치(德治)다. 동학의 조직인 포접을 만든 최시형은 “덕으로 사람을 화하는 자는 천심을 좆는 자요, 힘으로 사람을 복종케 하는 것은 이치에 거슬리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치다. 조선 왕조도 백성의 마음을 하늘의 마음이라고 보았다. 국가가 위난에 처할 때 임금은 자신의 덕이 모자람을 탓했다. 덕은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때 생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것이 세상사다.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 아니라 도달 불가능한 심연이다. 따라서 겸허하고 솔직할 때, 백성은 자신의 권한을 아낌없이 위임한다. 믿을 수 없는 정치가를 누가 따르겠는가. 백성의 믿음은 정치철학의 기반이다. 후덕한 대인은 상대방의 허물마저도 끌어안는다. 악순환의 업을 끊는 정치야말로 덕의 정치의 시작이다.

C학점의 정치는 법치(法治)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인의는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심지어 “민중의 지혜란 아무 데도 쓸모가 없고,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다”(<한비자>, 노재욱·조강환 해역)고 한다. 백성들에게 농사를 독려하고, 법률을 엄하게 적용하며, 나라의 창고를 채우고, 병역을 부과하는 것은 다 그들의 재산을 풍요롭게 하고 편안케 하고자 함인데, 통치자의 고마움도 모르며 가혹하고 포악하다고 원망하는 것은 민중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보았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법가에 의지해 유지되었지만 한 세대도 넘기지 못하고 멸망했다. 아만(我慢)을 내세우는 법은 욕망의 인간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법에는 또 다른 법이 대항한다. 법이 판치는 세상이 과연 모든 분쟁을 잠재우고 서로 평화로우며 우애 넘치는 사회인가. 법기술자들이 정치에 등용된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한국 정치의 현재 학점은 C학점이라고 판단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C에서 D학점으로 추락해가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정치의 수준이 ‘빌드업’되어 앞의 학점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오히려 법치마저 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며 시대착오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고양된 백성들의 정치의식마저 무시하며 정권을 전리품처럼 행사한다. 식민강권통치 유산의 청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회복적 정의 실현, 패권경쟁의 균형자 역할, 노동자 존중의 사회 구현은 길을 잃었으며, 백성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과연 현 정권의 정치적 실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기성정치에서 자유로운 현 대통령이 만에 하나 새로운 철학으로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나마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가의 무능은 백성의 불행이다. 부디 환골탈태하길 빌 뿐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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