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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폿집 애창곡 ‘오동동 타령’의 ‘오동추’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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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신고산 타령’ 흥얼거리다

뒤늦게 알게 된 노래 사연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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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소사에 대한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괜한 꼬투리에 짜증까지 더해 종종 무던한 마나님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천성이 까칠하고 소심한 탓인지, 아니면 남자가 나이가 들면 너 나 할 것 없이 밴댕이 소갈머리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찮은 일에 집착하고 사소한 문제에도 큰 탈 난 사람인 양 끌탕을 한다.

햇살 좋은 가을날에 바람이나 쐬려고 전남 여수에 다녀왔다. 여천공단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금호도 비렁길을 숨이 차도록 오르내리며 탁 트인 바다에 가슴까지 시원했다. 맛깔스러운 남도 음식도 입에 맞았다. 어스름해서 숙소를 찾아가는데 이정표에 ‘오동도’가 눈에 띈다.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문득 ‘오동동 타령’이 떠올랐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옛 청진동 허름한 대폿집에서 젓가락으로 죄 없는 술상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이던 애창곡이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의 막걸리를 맛도 모르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낙지는 가뭄에 콩 나기라 차라리 매운 채소 볶음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낙지볶음이 단골 안주였다.

‘오동동 타령’ 속 ‘오동동’의 유래가 혹시 여수 오동도가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새삼 ‘오동추’가 누군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태껏 그저 권주가라 여기며 무턱대고 앵무새처럼 입을 놀렸을 뿐, 뜻을 조목조목 따져 보지 않았다.

옆의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라는 노래 알지? ‘오동동’이 오동도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그리고 ‘오동추’는 또 누구야?” 근거 없이 ‘오동추’가 오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고 ‘야’는 손아랫사람을 부르는 조사로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는 엉뚱한 물음에 눈만 깜빡이다가 “글쎄, ‘오동동’은 잘 모르겠는데 ‘오동추야’의 ‘추야(秋夜)’는 가을밤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했다. 뜻밖의 답변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오동동 타령’은 1950년대 황정자가 불러 히트한 노래다. 이미 ‘오동동’을 오동도와 연관 지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황정자의 증언으로 ‘오동동’은 마산의 먹자골목 동네로 밝혀졌다. ‘오동추야’는 아내 추측대로 오동잎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밤의 묘사였다.

‘어랑 타령’이라면 고개를 갸웃해도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 차 떠나는 소리에’ 하는 장단에 어르신들은 금방 어깨를 들썩인다. 함경도 지방 민요로 개화기 무렵에 등장했다고 추정하는데 작곡·작사자는 모르고 가사 앞머리를 따라 ‘신고산 타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숱하게 ‘신고산 타령’을 흥얼흥얼하면서도 ‘신고산’이 설악산이나 금강산처럼 동해안 어딘가의 높은 산(山)인 줄 알았다. 함흥으로 향하는 기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가 산을 무너트릴 지경이라는 뜻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신고산’이 정확하게 어느 지방에 있고 또 얼마나 높은 산인지 알고 싶어졌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신고산’이 산이 아니고 고을 이름이었다. 누구에게 들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식이 통통 튀겨 얼굴이 화끈했다.

일제강점기에 함경남도 원산 부근의 ‘고산’이란 마을로 경원선이 지나게 됐다. 마을 외곽에 역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신시가는 신(新)고산으로, 원래 마을은 구{舊)고산으로 고쳐 불렀다. 경원선이 함흥까지 연결되고,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철마를 보며 시골 처녀가 대처에 대한 동경에 가슴이 설렜다는 노래다. 내용을 알고 나니 둘째 소절 ‘구고산의 큰애기/ 빈 봇짐만 싸누나’에 이미 답이 있었다. 개화기에 급변하는 사회상을 가사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학생 시절부터 꽤 즐겨 부르는 곡이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 생각’이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이은상과 박태준이 작사·작곡한 동요풍으로 1920년대 노래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노랫말이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청라언덕이 어디인지는 무심히 지나쳤다. 돌이켜 보니 음악 시간에 노래를 배우면서 발음도 쉽지 않은, 참 이상한 이름의 언덕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무료한 주말 오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애꿎은 TV 리모컨만 못살게 굴고 있었다. 대구의 볼 만한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프로에서 3·1 만세 운동 길 청라언덕을 설명하는 진행자의 멘트에 귀가 쫑긋했다. 대구 동쪽 얕은 동산에 서양 선교사 집의 담벼락을 담쟁이가 덮고 있어서 청라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옥편을 찾아보고 ‘나(蘿)’가 ‘쑥 라’라는 사실을 알았고 결국 청라는 푸른 담쟁이라는 뜻이었다. 평소 상식깨나 있다고 주름을 잡았는데 그만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오동추’와 ‘신고산’이 사람, 산이 아니고 ‘청라언덕’의 유래를 모르면 어떠냐. ‘전국 노래자랑’이나 ‘미스터 트롯’에 출전할 처지도 아닌데 혼자서 중얼거리는 노래가 저 좋으면 그만이지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교단에 있을 때 무엇이든 미심쩍은 내용은 꼭 책을 찾아서 확인하라고 후학을 호되게 다그쳤는데 정작 스스로는 실천에 옮기지 못했으니 낯이 뜨겁다.

모르는 것을 찾아보지 않고,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지낸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도 즐겨 부르던 노래의 정확한 내용을 흰머리의 좁쌀영감이 돼서야 터득한 속사정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마음놓고 뀌는 방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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