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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화물연대 총파업이 남긴 것···갈등 치달은 노·정관계, 안전운임제 논의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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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화물연대가 조합원 투표 끝에 총파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9일 경기도 의왕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조합원들이 투표 결과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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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이 16일만에 끝났다. 화물연대는 9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파업 중단을 결정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도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현행 안전운임제의 일몰 시한이 당장 올해 12월로 종료되기에 우선 이를 유지하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파업의 주된 이유였던 안전운임제 지속추진은 ‘일몰시한 3년 연장’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졌다. ‘품목 확대 없는 3년 연장안’은 파업 돌입 전 정부가 제시한 안이다. 화물연대는 ‘일몰시한 폐지’를 내세우며 파업에 나섰지만 지난 8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을 수용하면서 힘이 빠졌다. 민주당은 이날 일몰 3년 연장안을 담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독 의결했다.

화물연대가 일몰시한 폐지와 함께 요구한 ‘차종·품목 확대’는 논의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민주당이 ‘여야 동수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물연대는 당장 올해 안에 논의가 진행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다만 올해를 넘겨도 관련 논의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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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조합원 투표 끝에 총파업을 중단하기로 한 9일 경기도 의왕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조합원들이 투표 결과 소식을 듣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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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는 파업 종료 이후에 더 많은 숙제를 안았다. 우선 강경 일변도의 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시작 전부터 ‘정치투쟁’이라 규정하고 ‘불법’ ‘조폭’ ‘귀족노조’ 프레임을 씌웠다. 법과 원칙만을 강조하며 노조를 ‘제압 대상’으로 여겼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도 앞다퉈 노조혐오 발언을 이어갔다.

정부는 결집한 화물노동자들에게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대응했다. 업무개시명령부터 행정처분, 경찰 수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온 부처가 달려들었다. 총파업이 시작되고 일주일도 안 된 지난달 29일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지난달 28일과 30일, 화물연대와 두 차례 짧은 만남 이후에는 아예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화물연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긴급개입 요청을 받아 한국정부에 공문을 보냈지만, 이를 단칼에 무시했다.

대통령실은 9일 화물연대 총파업 중단에 대해 천문학적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작 노동시장 하층위에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기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부가 이번 화물연대 파업 대응에서 보여준 방식은 앞으로 다른 노·정 갈등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수정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좋든 싫든 노동계와 함께 나아가야 하는데, 마치 힘겨루기로 기세 싸움에 나선 것은 갈등만 부추기게 된다”고 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공 발언 등이) 단기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가는 효과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대화 공간마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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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총파업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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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해지는 ‘노조 혐오’ 분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지도 관건이다. 지난 6월 화물연대가 1차 총파업을 벌였을 때 시민들은 기름값 폭등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화물노동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그러나 이번 2차 파업에서 화물연대는 싸늘한 여론을 확인했다. 한국 사회 전체에 ‘노조에 대한 적대감’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강경탄압’ ‘나쁜 정부’ 그 이상의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총체적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정부의 대화 상대로 나설 조직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국내외 연구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가 제대로 된 제도인지 검토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1~2년 기간 동안 진행된 조사로 안전운임제 효과를 분석하기에 한계가 있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며 “적정 운임보장이 사고 발생률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사고 추세를 보려면 장기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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