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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2023년 인디 기대작 ‘샴블즈’ [쿠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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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칼럼 - 이유원 ]

인디게임의 매력은 역시 과감하고 독창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GIGDC(글로벌인디게임제작경진대회)와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하며 유저들과 게임업계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EXLIX(익슬릭스)의 ‘샴블즈’를 플레이해보고 든 생각이다.

지하 벙커와 고블린, 마법과 수류탄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덱 빌딩 RPG 게임인 샴블즈는 인디게임 팬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라면 모두 알차게 챙겼다. 선택에 따라 분기가 달라지는 텍스트 스토리텔링, 아이템 파밍과 강화, ‘패스 오브 엑자일’을 연상시키는 거미줄 모양 스킬 트리, 독창적인 세계관과 아트, 덱 빌딩 로그라이크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옛 고전 턴제 RPG 감성을 내는 전투 페이즈까지. 진심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이 완성하고 싶은 목표를 갖고 열심히 만든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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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익슬릭스의 <샴블즈> 게임 소개 이미지.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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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블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2년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였다. 매년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인디게임들이 선보이는 자리에서, 아름다운 아트와 독특한 장르 소개가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나중에 플레이해봐야지’ 하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게임업계 분들과 유저 분들이 잊을 만하면 꾸준히 추천해주시는 게 아닌가. “샴블즈라는 게임이 공개되었는데, 서울 2033 느낌도 나고 재밌어요”라는 내용이 공통적이었다. 그렇게 그 이야기를 두 번쯤 듣자마자, 회사에 가서 공개된 샴블즈의 데모 버전을 즉시 설치했다. 숨은 보석을 발견한 것 같아 무척 설레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전체적인 첫인상은 제정신스튜디오의 ‘메트로 블로썸’이 많이 연상됐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테마 자체와, 대화 위주로 오밀조밀하면서도 현장감 있게 진행되는 스토리 서술 방식 때문에도 그랬지만, 뭐니뭐니해도 샴블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배틀’ 게임 구조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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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스튜디오의 메트로 블로썸 게임 소개 이미지. 텀블벅 펀딩, 구글 인디페 수상이라는 발자취까지 닮았다. 플레이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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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선택지로 이루어진 스토리 부분을 진행하고, 중간중간 전략 카드 게임으로서 전투가 등장하는 구조. 게임학적 입장에서 봐도 굉장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구조인데, 스토리텔링 부분은 유저의 ‘내러톨로지’, 서사적 욕망을 채워주고, 카드 게임 부분은 유저의 ‘루돌로지’, 즉 유희적 욕망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별개의 장르를 접착제로 붙여놓기만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두 부분은 서로에게 동기 부여를 반복하면서 유저들을 게임에 빠져들게 만든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저 지하 벙커의 문을 열면 무엇이 있을까? 매력적인 세계관 어필과 독특한 테마 덕에, 여기서 유저의 서사적 욕망이 자극된다. 샴블즈는 호락호락하게 그 결과를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 전략을 세우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카드 게임이 허들로서 등장한다. 유저는 이 카드 게임 부분을 열심히 수행하고, 보상으로 다음 이야기를 확인한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전투 페이즈에서 강력한 힘을 휘두르고 적을 쉽게 쓰러뜨리고자 하는 유희적 욕망을 가진 유저는, 설령 글을 읽기 싫어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 올바른 선택 하나가 강력한 새로운 카드를 얻게 해줄 수도 있고, 내 잘못된 선택 하나가 불필요하게 어려운 스테이지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분의 유기적인 동기 부여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한 유저가 어디에서 욕망을 느끼는지를 엄밀히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의 분석도 가능하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성공이 인디게임 팬과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구조에 대한 영감을 제공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덱 빌딩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를 선보이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스스톤’과 ‘궨트’ 등이 디지털 전략 카드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드 게임 유저들은 왜 내 덱에서 카드를 뽑는 효과가 좋은 효과인지, 왜 덱에 카드 장수가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유리한지, 왜 한 종류의 카드는 다른 종류의 카드보다 뛰어나거나 뒤떨어지면 밸런스에 문제가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힘입어,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자신들이 선보이는 장르와 게임 플로우를 일일히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고를 덜었다. 유저들은 자신들의 디지털 카드 게임에 대한 인식 기반 아래서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새롭게 선보이는 재밌는 부분을 맘껏 즐기면 되는 것이었을 뿐.

샴블즈 또한 이런 방식으로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인기가 만들어둔 인디게임 팬들의 인식에 기반한 구조를 사용한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 얼마나 많은 덱 빌딩 게임이 출시되었는가? 해당 장르의 팬들은 이미 ‘덱 빌딩’과 ‘카드 전략’ 장르에 대해 많은 인식과 이해를 가지게 됐다. 원래는 그 자체로도 예전에는 하나의 훌륭한 게임이 되었을 ‘카드 전략’과 ‘덱 빌딩’ 부분이, 이제는 유저들에게 너무 익숙하고 친숙해진 나머지 샴블즈에서처럼 하나의 구조 정도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제는 유저들이 더 상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으로 밟고 가는 ‘노동’처럼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노동’은 재미없거나 귀찮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3-매치 퍼즐 장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생각해보면 금세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는 ‘캔디 크러시’, ‘애니팡’ 같은 게임은 별도의 메타 피쳐나 스토리 없이도 그 자체로 강력하고 매력 있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미 3-매치 퍼즐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너무나 친숙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졌기에, 지금의 3-매치 퍼즐들은 집을 꾸미거나, 수족관을 꾸미거나, 스토리라인을 추가하는 등 다양한 메타 피쳐를 적용하고 있으며, 타 장르 게임에서도 유저의 투입이 필요한 부분에 미니 게임으로서 3-매치 퍼즐 구조를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다.

유저와 게임은 함께 차근차근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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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거상의 미니게임. 유저들의 인식의 발전에 따라 그 자체로 게임이 되기도 하고, 구성 요소가 되기도 한다. process0modesty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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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샴블즈의 매력은 바로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유저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데에 있다. 강화나 스킬 트리 같은 RPG 요소 역시 이해하기 쉽고 친숙하다. 인디게임 팬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져왔고, 부담 없이 적용했다.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복잡한 공부나 긴 튜토리얼 없이도 이것들을 다 이해하고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단계에 와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조금 있었다. 첫째로는 아직 스토리텔링에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미 있는 선택이나 분기를 유저가 체감할 수 있게끔 만들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사적 욕망을 채워줌으로써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에게도 초반부터 강력한 동기 부여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로는 서로 다른 구조와 장치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만큼,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유저가 직접 느낄 수 있는 장면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새로 파밍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을 때, 스토리 텍스트 내에 동료가 “어, 그거 못 보던 모잔데. 멋진데?”라고 말한다거나,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다음 전투 페이즈에서 카드를 1장씩 덜 뽑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샴블즈가 가진 다양한 장르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인디게임 개발자이자, 열렬한 게임 팬으로서, 샴블즈 같은 흥미로운 게임들이 계속 탄생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현재 샴블즈는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팀 익슬릭스가 보여줄 앞으로의 매력적인 작업들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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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 반지하게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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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
1995년생. 초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3년차 게임회사 대표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를 졸업하고, '아류로 성공하느니 오리지널로 망하자'는 회사의 모토를 받들어 올해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자퇴했다. 게임 기획자로서 '허언증 소개팅!' '중고로운 평화나라' '서울 2033' 등 기존에 없던 소재와 규칙의 게임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NDC, G-STAR,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지역 고등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디게임 기획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에 대해 강연해왔다.

yuwon@banjihaga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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