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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공약은 광역단체가 하고, 돈은 기초단체에 내라는 ‘행정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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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우종 충북도 행정부지사(왼쪽 셋째) 등이 지난 10월 충북도청에서 출산·육아 수당 등 김영환 충북지사의 100개 공약 사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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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 간 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돈 문제’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정 씀씀이가 빡빡해진 측면도 있지만 선심성 공약을 던져 당선된 광역단체장이 그 부담을 기초단체에 떠넘기는 ‘갑질 행정’ 탓도 있다.

충북도는 내년부터 펴려 한 출산·육아 수당 지원 정책이 난항에 빠졌다. 이 정책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지방선거 핵심 공약으로, 0~5살 아이에게 5년 동안 최대 5265만원을 지급하는 게 뼈대다. 선거 당시에도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던 공약이었다. 예견대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는 재원의 60%를 시·군에 부담시키려 하지만 여기에 반발하는 기초단체가 적잖다. 돈 내라는 통보를 받은 11곳 시·군 중 청주·충주·음성 등 3곳이 강하게 반발한다. 특히 지난해 충북 출생아 8200명 중 5100명(62%)이 태어난 청주의 목소리가 크다. 이윤정 청주시 여성가족과 주무관은 “91억원에서 출발해 5년차인 2027년엔 336억원까지 예산이 불어난다. 5년 누적 필요 예산이 1700여억원이다. 금액과 대상 등 지원 기준 조정이 없으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도 시와 자치구 간 갈등이 첨예하다. 서울시가 내년 예산을 깐깐하게 짜면서 시비 지원 사업 비율(기준 보조율)이 내려가 자치구 부담이 늘어날 형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자치구 청소용수 요금, 시 지정 문화재 보수, 서울형 뉴딜 일자리 등 사업 예산은 지금껏 100% 시가 부담했으나 내년에는 사업별로 70~90%만 시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자치구가 맡도록 조정했다. 이에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자치구는 의존재원 비중이 크고, 해마다 재정여건 변동이 커 시의 보조율 조정으로 자치구 간 불균형이 심화할 것”이라며 “시비 기준 보조율을 유지하거나 조정을 재검토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관련 조례와 규칙을 개정하며 강행 카드를 선택했다.

대전시에선 주민참여예산을 놓고 자치구와 힘겨루기 중이다. 대전시는 고물가와 인건비 상승, 대규모 투자 사업 등을 이유로 200억원이던 내년 주민참여예산을 100억원으로 반토막 냈다. 서철모 대전구청장협의회장(서구청장)은 “주민참여예산은 주민이 마을 사업을 발굴해 제안·시행하는 사업으로 주민과 한 약속이다. 주민 총회 등을 거친 사업 관련 예산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이 다른 이장우 대전시장(국민의힘)과 정용래 유성구청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월 이 문제를 놓고 언쟁까지 벌였다.

교육청과 자치단체 사이의 갈등도 있다. 김대중 전남교육감의 1호 공약인 학생교육수당 지급을 놓고 전남교육청과 일부 자치단체가 마찰을 빚는다. 김 교육감은 애초 모든 초중고생(18만2천여명)에게 매달 20만원씩 수당을 준다고 공약했다가 재정 상황을 고려해 소멸위기 군 16곳의 초등학생(2만3700여명)만 지급하는 쪽으로 지원 범위를 좁혔다. 이에 전남시장군수협의회는 지원 대상에서 빠진 목포·무안 등 시·군 6곳을 다시 포함하고, 중고생까지 지원을 확대하라고 교육청에 요구 중이다.

이석진 전남교육청 정책기획과 장학사는 “재정 상황을 고려해 시·군에 일부 예산을 분담하는 대응 투자 의향을 물었지만 ‘불가’ 뜻을 밝혀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 학생에게 수당을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며 “추후 자치단체와 협의해 지급 대상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진재구 청주대 교수(행정학)는 “광역·기초 단체장 모두 선출직이고, 지방자치 행정의 고유 영역이 있으므로 국가나 광역단체가 규모가 작은 기초단체를 예산 등을 무기로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며 “특히 선거 때 한 공약을 정책으로 만들어 시행할 때는 광역-기초단체 간 협의·조정·조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교육청과 자치단체 사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윤주 김선식 최예린 김용희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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