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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행적 감춘 김봉현, 가족의 ‘수사 혼선’까지…골머리 앓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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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한 달 가까이 잠적 중인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봉현(48)씨와 그 가족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의 조카와 누나가 김씨의 도주를 도운 것으로 의심되지만 김씨의 소재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피를 돕는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선 신병확보가 필요했지만 방법이 마땅찮았다. 김씨의 누나는 미국에 사는 데다 ‘친족 또는 동거가족이 범인을 은닉·도피하게 한 죄를 범할 땐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151조 2항)’는 법 때문에 두 사람이 도피를 도왔다는 사실 자체로는 죄가 안되기 때문이다. ‘친족’은 민법에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및 4촌 이내의 인척’이라고 규정돼 있어 조카도 친족이다.

김씨를 쫓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준동)가 고심끝에 꺼낸 궁여지책이 조카 A씨에게 공용물건손상(형법 141조)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지난 7일)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11일 김씨가 잠적하기 직전 보석 조건으로 차고 있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팔찌)를 끊을 때 A씨의 조력이 있었으므로 이 혐의의 공범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다행히 궁즉통(窮則通)이었다. 서울남부지법 권기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오후 10시48분쯤 “도망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후 1시50분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으로 온 A씨는 “김씨 도주에 가담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봉현씨가 지난달 11일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팔찌)를 끊는 데 도운 의혹을 받는 김씨 조카가 8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오고 있다. 김씨는 28일째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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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된 죄목은 공용물손상이었지만 검찰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인도피 행위를 특별히 강조하며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A씨가 김씨의 신호가 사라지던 지난달 11일 새벽 강남구 개포동 모처에서부터 오후 팔당대교 인근까지 동행한 것을 확인했다. 애초 A씨는 김씨의 동선에 대해 자택에서 여의도 소재 한 교회로 간 뒤 팔당대교로 이동했다가 다시 김씨를 여의도로 데려다줬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근거로 A씨를 재차 추궁했다고 한다. 그러자 A씨는 “사실은 (김씨를) 팔당에서 내려줬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수사의 혼선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는 A씨의 오락가락 진술이 영장 발부의 필요성을 높인 면이 있다”며 “김봉현 도주의 빌미를 법원이 줬다는 점도 영장전담판사 입장에서 의식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일보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봉현씨는 지난달 11일 오후 1시30분쯤 경기 하남 팔당대교 인근에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한 뒤 지명수배가 된 상태다. 심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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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 있는 김씨 친누나는 김씨가 도주한 이후 지인들과 연락을 나눌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검찰은 김씨가 누나에게 메신저 ‘카카오톡’ 기능인 보이스톡이나 ‘텔레그램’으로 연락하면, 누나가 다른 휴대전화로 김씨가 연락을 나누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연락해서 스피커폰으로 두 사람을 연결해줬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런 방식으로 김씨와 연락을 나누며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지난달 20일과 21일 각각 구속된 측근 2명은 지난 6일 범인도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이들도 김씨의 행방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법원으로부터 범인도피교사 혐의롤 김씨의 누나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외교부에도 여권 무효화 조처를 요청하긴 했지만 김씨 누나가 스스로 귀국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의자가 해외 도피중인 사건을 수사해 본 경험이 있는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제 발로 들어오게끔 유도하지만, 물 떠놓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6일 광주광역시 소재 A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자택에 있던 김씨의 모친이나 그의 또 다른 누나에게도 김씨 소재를 물었지만, 이들 역시 “모른다”는 답만 내놨다. 김씨가 쓰던 휴대전화나 각종 서류 등도 확보했지만, 그의 행적을 파악할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씨 추적에 대한 동력도 차츰 떨어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검찰 안팎에서 흐른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를 쫓는 데에만 계속 수사력을 집중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해당 부서가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도 많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형사6부는 공공·반부패·마약범죄 전담부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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