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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기억할 오늘] 남녀의 몸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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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그웬 제이콥
한국일보

1991년 기소 직후 캐나다 온타리오주 구엘프 시 법원 앞에서 항의시위대 앞에 나선 그웬 제이콥.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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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만 19세 여성 그웬 제이콥(Gwen Jacob)이 1991년 7월 상의를 탈의하고 구엘프(Guelph) 도심 거리를 걷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형법상의 ‘외설죄(공연음란죄)’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끈질긴 법정 공방 끝에 96년 12월 9일 항소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그날 구엘프 최고 기온은 섭씨 33도였다. 구엘프대 학생 제이콥은 걸어서 귀가하던 중 “너무 더워서(…남자들처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자” 웃통을 벗었다고 했다. 그가 연행되던 현장 인근에서 웃통을 벗고 운동하던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의 기소와 재판은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 일로 제이콥은 “의도치 않게” 몸의 권리에 대한 여성운동의 상징적 전사가 됐다.

20주년이던 2011년 인터뷰에서 그는 “요즘도 나는 가끔 상의를 벗지만, 그게 ‘자 이제 우리도 할 수 있으니, 다 함께 벗자’ 식의 캠페인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래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여성의 상반신 노출이 개인의 법적 권리로 인정됐다고 해서 사회가 곧장 바뀔 리 없다. 법보다 앞선 더 완고한 문화와 관습, 인식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검열에 대한 두려움, 다른 여성들의 가슴과 비교당하고 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성들의 토플리스를 향한 바람을 누른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이콥의 법적 투쟁은 당연하게 여긴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부여했다. 여성의 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관습의 부조리. ‘남자(의 몸)와 여자(의 몸)는 다르다’는 막연한 주장 자체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고 상품화하고 과성애화해온 사회적 통념과 규범의 결과라는 깨달음과 반성.

2018년 한국의 한 페미니즘 단체의 상의 탈의 시위 때도 유사한 논쟁이 빚어졌고, ‘남자(의 몸)와 여자(의 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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