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1] 순간의 선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사람은 늘 착잡하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짧은 시간을 푸념하는 표현이 발달했을 듯하다. 순식(瞬息)이 우선 그렇다. 눈 한 번 깜빡이고[瞬], 숨 한 차례 쉬는[息] 시간이다. ‘순식간(間)’, 또는 줄여서 ‘순간(瞬間)’으로 적는다.

눈동자 한 번 굴리는 일은 전순(轉瞬)이자 별안(瞥眼)이다. 우리는 ‘별안간(間)’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손가락 한 차례 튕기는 시간이라는 뜻에서 탄지(彈指)라고 적을 때도 있다. 모두 짧은 시간의 형용이다.

가장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라고 한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한자(漢字) 권역에 자리를 잡은 음역(音譯) 단어다. 한 차례의 마음이 일었다 사라지는 일념(一念)도 있다. 고대 인도의 시간 기준으로는 찰나가 가장 짧고, 그 다음이 일념, 이어 순간의 순서란다.

흰색 말이 휙 지나가는 광경을 문틈으로 보며 적은 성어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다. 마치 섬광처럼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는 모습이다. 역시 세월의 ‘광속(光速) 주행’을 일컫는다. 구극(駒隙), 극구(隙駒), 구광(駒光) 등이 파생 단어들이다.

경각(頃刻), 편각(片刻)도 있다. 후딱 스쳐가는 시각(時刻)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수유(須臾)라는 말로도 잘 적었다. 비의 모습에서 유래한 삽시(霎時)라는 단어도 있다. 앞 글자 ‘삽’은 조금 내리다가 곧 그치고 마는 비다. 따라서 ‘삽시’는 역시 길지 않은 시간의 지칭이다. ‘삽시간’이라는 말로 자주 쓴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44년째다. 그에 견주면 최근 1~2년은 ‘삽시’라고 할 만하다. 길지 않은 그 시간에 활력 넘치던 중국이 크게 생기를 잃었다. 개방적인 기조의 후퇴가 큰 원인의 하나다. 흥망(興亡)과 성쇠(盛衰)의 고비 또한 어느 한 ‘순간’의 마음먹기에 달렸을지 모른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