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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메날두 시대 끝낸 모드리치 “네이마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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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구가 왜소한 모드리치는 그라운드를 밟는 순간 크로아티아 400만 국민의 근심과 불안을 잠재우는 ‘괴물’로 변신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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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m72㎝, 몸무게 66㎏.

가녀린 팔다리에 찰랑거리는 금발 단발머리의 남자는 운동 선수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그라운드만 밟으면 ‘괴물’로 변한다. 경기 침체와 정치 불안에 지친 크로아티아 국민은 그의 플레이를 볼 때만큼은 모든 근심을 잊고 열광한다. 발칸 반도에 자리 잡은 인구 400만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 주장이자 미드필더인 루카 모드리치(37·레알 마드리드)가 주인공이다.

크로아티아는 지난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1로 이겼다. 크로아티아는 10일 0시 열리는 8강전에서 수퍼스타 네이마르가 이끄는 우승 후보 브라질과 맞붙는다.

4번째 월드컵, 메시·호날두와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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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대표팀의 간판 모드리치(오른쪽)와 수비수 로브렌은 과거 전쟁의 아픔을 겪었지만, 불우한 어린시절을 이겨내고 월드컵 8강을 합작하는 영웅으로 우뚝 섰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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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16강전에서 한국을 4-1로 꺾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즐라트코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은 “브라질은 세계 최강 팀이지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기회를 노리면 된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가 믿는 구석은 에이스 모드리치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의 준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 격인 골든볼을 받은 특급 미드필더다. 1985년생으로 만 37세가 된 모드리치는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릴 만하다. ‘축구 도사’ ‘중원의 모차르트’ ‘마에스트로’ 등 별명에 걸맞게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중원을 장악하면서 공·수를 조율했다. 두세 명의 압박을 쉽게 벗어나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줬다. 벨기에·캐나다·모로코와 F조에서 경쟁을 펼친 크로아티아는 무패(1승2무)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모드리치는 이번 대회에서 크로아티아가 치른 4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활동량은 전성기 못지않다. 모로코와 벨기에를 상대로 한 조별리그에서는 전후반 90분을 모두 뛰었고, 4-1로 여유 있게 이긴 캐나다와의 경기에서만 86분을 뛰고 물러났다. 일본과의 16강전에선 연장 전반 중반까지, 99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스페인 마르카는 “모드리치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며 그의 활약을 소개했다.

모드리치의 경험과 열정은 크로아티아 젊은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크로아티아의 수비수 요시프 유라노비치(27)는 4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드리치가 모든 것을 다 바쳐 뛰는 장면을 볼 때 젊은 선수들은 여분의 에너지를 얻는다”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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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모드리치


모드리치는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와 닮았다고 해서 ‘발칸 반도의 크루이프’로도 불린다. 국내 팬들은 축구 선수치고는 몸집이 작은 그를 ‘모 공주’라고 부른다. 모드리치는 10년간 이어진 ‘메날두(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시대’를 처음으로 깬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8년 전 세계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메시와 호날두가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던 시대에 다른 선수가 발롱도르 상을 받은 것은 11년 만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준우승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모드리치가 수상하기 전까지는 메시와 호날두가 5회씩 상을 받았다.

모드리치는 네 번째 월드컵 본선 무대인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메시, 호날두와 경쟁한다. 모드리치 역시 ‘메날두’와 마찬가지로 이번이 ‘라스트 댄스’다.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호날두의 포르투갈 역시 8강에 올랐다. 3명의 선수 모두 아직 한 번도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모드리치는 이번에도 둘을 제치고 시상대 맨 위에 서는 꿈을 꾼다. 더불어 메시와 함께 월드컵 사상 최초로 골든볼 2회 수상도 노린다.

전쟁난민 출신, 길거리서 공 차며 꿈키워

모드리치는 지독하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처참한 난민 생활을 했다. 영양실조로 비쩍 마른 몸에 장비를 살 돈이 없어 나무로 만든 신가드(정강이 보호대)를 대고 공을 찼다. 그래도 그는 꺾이지 않았다. 축구 스타의 꿈을 키우며 길거리와 주차장에서 공을 찼다. 그에게 축구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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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월드컵 8강


크로아티아 대표팀에는 모드리치처럼 전쟁의 아픔을 겪은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절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수비수 데얀 로브렌(33)이다. 그는 세 살 때 크로아티아인 부모와 함께 독일로 강제 이주했다가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다. 크로아티아 국민은 모드리치와 로브렌이 카타르월드컵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로아티아가 8강 진출을 확정하던 지난 6일, 수도 자그레브에선 수많은 팬이 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유로스포르트는 “광란”이라고 표현했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모드리치의 라스트 댄스가 멈춰선 안 된다”며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모드리치도 아직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우리는 강팀이 아니라서) 경기마다 사력을 다해야 이길 수 있다. 동료들을 믿는다”면서 “결과에 대해선 생각 안 한다. 경기를 즐기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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