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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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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해산하려다 쫓겨났다'...대통령 탄핵에 페루 정국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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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탄핵소추 못 피해
부통령이 승계...첫 여성 대통령 "통합" 약속
툭 하면 탄핵...새 정부 순항할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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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부통령이 7일(현지시간) 리마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국회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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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취임 이후 3번째 탄핵 위기에 몰렸던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결국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이에 따라 부통령인 디나 볼루아르테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페루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된 볼루아르테는 '국가 통합'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찬반 시위가 가중되는 등 혼란은 가라앉지 않을 걸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된 지 2시간 만에 신임 대통령 취임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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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이 탄핵된 뒤 구금된 리마주 외곽에서 카스티요 지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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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페루 수도 리마에선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탄핵 절차와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 취임 행사가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은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취임식을 갖고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휴전을 요구한다”며 “정파를 떠나 민심을 추스를 수 있는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나머지 임기(2026년 7월 26일)를 채우게 된다. 앞서 페루 의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카스티요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강행 처리했다.

급진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개헌과 에너지 분야 국가 통제 강화, 1년에 100만 개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서민층의 큰 지지를 받았다. 특히 그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4년간 시골학교 교사로 지낸 점도 기존 정·재계 엘리트 출신 정치인들과 차별화됐다. 당시 그는 취임사에서 “처음으로 농부가 우리나라를 통치한다"며 “부패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부패 의혹으로 검찰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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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이 지난 10월 11일 리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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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취임 일성과 달리 그는 재임 기간 뇌물수수와 인사 참사 등 끊임없는 부정부패와 실정 의혹에 시달렸다. 페루 검찰총장은 지난 10월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자기 가족과 측근들이 연루된 범죄 조직을 이끌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취임한 이후 단 6개월 사이에 총리가 3번 교체되는 등 인사참사가 빚어지면서 그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빈농 출신으로 서민층의 지지를 받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전무한 정치 경험이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페루 의회에선 앞서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모두 부결됐지만, 당시 블룸버그가 페루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63%가 “카스티요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대답할 정도로 민심은 악화된 상태였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서민들의 지지까지 잃자 그의 탄핵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전망이 커졌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 의회 해산 발표에..."사실상 쿠데타"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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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중남미 페루의 페드로 카스티요(53) 대통령이 구금된 리마 행정구역 외곽에서 대통령 지지자 한 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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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의회가 이날 또다시 탄핵을 추진하려 하자 의회 해산 카드까지 꺼내 들며 막으려 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비상정부’ 수립을 선언한 뒤 "현재의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선택은 의회에서 그의 탄핵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매가 됐다. 의회 해산을 사실상 ‘쿠데타’라고 규정한 정치권과 시민들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그가 임명한 내각 장관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세사르 란다 페루 경제·외무장관은 “카스티요의 셀프 쿠데타”라고 비꼰 뒤 "정부 각료가 모르는 사이 이런 위헌적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장도 국회가 볼루아르테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길 수 있도록 예정대로 탄핵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이 향후 4년간 국정 운영을 책임지게 됐지만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전례를 따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루 의회가 신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협조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페루 의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건 이번이 7번째다. 특히 7번 중 6차례는 최근 5년 사이에 벌어졌다. 페루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하는 한국 등과는 다르게 의회 의결로 곧바로 탄핵하는 게 가능하다. 영국 BBC방송은 “페루에선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며 “카스티요 정부의 2인자로 불렸던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의 앞길도 험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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