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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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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일 포르투갈전 경기를 마친 뒤 권경원(왼쪽), 조규성(오른쪽) 선수가 관중석에서 전해 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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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월드컵 열기가 열광적이었던 열흘이었다.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사석에서 지인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축구 어디서 보세요? 하고 물었더니, 자신은 관심 없다는 기색을 보였다. 단체행동에 반골 기질이 있는 편인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축구랑 나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내 삶이 팍팍한데,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스포츠 전문 통계회사에서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9%라고 했다. 경기 시작 전 나 또한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는 힘들겠는데, 하는 체념의 마음이 컸다. 확률이 적은 일에 기대를 크게 하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1대1 상황에서 남은 시간이 5분, 1분을 지나 추가시간에 이르렀을 때는 에이, 떨어졌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축구대표팀의 집념은 그런 내 생각을 기분 좋게 부숴줬다.

포르투갈전 추가시간에 터트린 역전골과 다른 경기장의 결과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16강 진출의 서사는 잘 짜인 각본 그 이상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감동과 눈물의 드라마였다. 그리고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 쓰여 있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널리 회자했다.

많은 사람이 올해의 명언으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뽑았다. 이 밈의 출처는 유튜브 섬네일 제목이다. e스포츠인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팀 DRX 주장 데프트가 인터뷰에서 “오늘은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것 같아요”라고 한 말을 문대찬 기자가 타이틀로 뽑았다. 그리고 언더독으로 여겨지던 DRX가 강팀을 연파하고 우승을 이뤄내면서 그 문구는 더 유명해졌다.

손흥민 선수의 눈물은 4년 전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에 승리하고도 다른 경기장의 결과와 경우의 수 때문에 탈락했던 경험 때문에 더 감동을 줬다. 손흥민 선수는 인터뷰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모두가 모여서 다른 경기장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에 우루과이가 한골 더 넣어 우리가 포르투갈을 잡고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을 우주를 상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그 순간 순수하게 감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스포츠에는 그런 감동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선수들의 몸값이 높고 유명한 팀만 100% 승리한다면 애초 시합을 치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면 기적은 이루어진다.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상투적일 정도로 흔한 것이지만 이번 경기는 진정한 인생에 대한 메타포가 아니었나 싶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승리했고, 나머지는 다른 경기의 결과라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 했다.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9% 확률은 제로가 아님을, 우리는 다 함께 체험했다. 세상에는 인생을 바꿀 좋은 경구들이 넘쳐나지만, 사람이 진정 변하려면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직접 체험을 통해 각인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번 축구대표팀 경기는 온몸이 소름 돋는 전율로 각인됐다. ‘자살하면 그만이야’ ‘누가 칼 들고 협박함?’ 같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던 한해의 밈 중에서 올해의 명언으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회자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근사한 마무리다. 그리고 축구대표팀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목도한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면, 이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공놀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태도와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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