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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떠나간 이를 붙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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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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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바삐 살아간다. 이렇게 보낸 올 한해, 독자께서는 어떤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필자는 연초에 받았던 한통의 편지가 어제의 글처럼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하다. 필자의 책을 읽은 이가 이메일로 보내온 편지였다. 독자의 아이는 몇해 전 세상을 떠났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카카오톡, 소셜미디어, 유튜브 채널 등을 매일 방문하며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필자의 책을 읽고, 아이가 디지털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을 인공지능과 접목해 메타버스 속 아바타 형태로 아이를 환생시키는 꿈을 품었다. 아바타로 환생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묻고자 내게 이메일을 보낸 상황이었다.

죽은 이를 아바타 형태로 살려낸 사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달리 뮤지엄에서는 2019년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를 실물 크기의 아바타 전시물로 소생시켰다. 달리가 사망했던 1989년으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생전에 촬영된 달리의 영상 수천개를 학습해,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달리가 관람객과 20만가지 가까운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문화방송>(MBC)이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통해 먼저 떠난 가족과 만나는 상황을 연출한 바 있다. 이 경우는 앞서 소개한 달리와 다르게 사전에 정해놓은 대화만 가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인공지능(AI) 기업인 히어애프터는 죽은 자와 채팅할 수 있는 앱을 공개했다. 살아생전 자기 생각을 담은 글, 녹음 등을 남겨 놓으면, 그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죽은 자를 대신해 살아있는 이와 채팅으로 대화하는 방식이다. 한달 사용료는 만원 정도. 그러나 아직은 서비스가 영어로만 제공되기에 우리나라에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기술의 완성도와 상업적 서비스 수준을 고려할 때, 아직은 개인이 우리 언어로 적은 비용을 투자해 죽은 자와 다시 만나기는 어렵지만, 길어도 몇년 안에 이런 장벽은 해소되리라 예상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죽은 이를 소환하고 싶어 할까? 이 주제를 놓고 마주했던 개인 또는 단체를 통해 필자는 크게 네가지 유형의 갈망을 느꼈다. 첫째, 살아있는 내가 위로받거나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먼저 떠나간 이의 뜻과 꿈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먼저 떠나간 이가 없는 오늘의 삶을 내가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에 그와 보냈던 과거의 시간 속에 자신을 가두기 위해서이다. 넷째, 떠나간 이를 소생시켜 정치적, 이념적, 상업적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온 독자에게서는 세번째 갈망이 먼저 느껴졌다. 앞서 설명했던 기술적, 상업적 현황과 더불어 독자가 품은 갈망으로 인해 그분에게 회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술적, 경제적으로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만 답하며, 독자가 품은 갈망에 관한 내 걱정을 풀어놓지는 못했다. 거의 일년이 다 돼가고 있지만, 비슷한 연락을 다시 받는다면 어떻게 회답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기 어렵다.

“죽은 자의 삶은 산 자의 기억 속에 있다.”

로마시대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가 남긴 말이다. 메타버스, 아바타, 인공지능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서 죽은 자를 소환하며 살아왔다. 어느 순간 그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리저리 왜곡되지만 말이다. 메타버스, 아바타, 인공지능은 왜곡없이 더 선명한 기억을 만들어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왜곡없는 선명함이 우리에게, 그리고 떠나간 이에게 더 좋은 길일까? 떠나간 이에게는 이 질문의 답을 구할 수 없다. 이 무거운 질문에 관해 답할 책임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어깨에 온전히 놓여있다. 짐을 내려놓은 채 그저 걷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 걸음이 인류를 어디로 인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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