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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에 하수도 깔며 5조 기업 꿈꿨다…SF 소설은 유연성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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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김동녕 한세실업 회장 인터뷰

“의류 분야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큽니다. 한세실업이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업체지만 한 해 의류만 330조원어치를 수입하는 미국·일본·유럽 3대 시장에서 점유율은 아직 1%가 채 되지 않죠. 이 비율을 10~20%까지 올릴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중앙일보

50년 동안 한세 그룹을 이끌어온 김동녕 회장이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그룹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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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녕(77)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말이다. 1972년 27세의 나이로 한세실업의 전신인 한세통상을 세운 지 꼭 50년. 한세는 현재 전 세계 9개국 20개 법인에서 5만 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패션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갭·H&M·아메리칸이글 등 글로벌 의류 브랜드,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타겟의 자체상표(PB)상품 등 연 4억 장의 의류를 수출하고 있다.

사업 영역도 확장 중이다. 2003년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시작으로 동아출판·한세엠케이·한세드림 등을 인수했다. 지주회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2조7988억원, 영업이익은 1346억원이었다. 김 회장은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서 성장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기억에 남는 ‘분기점’이 있다면

A : 1972년 한세통상을 세우고 부도가 난 뒤 3년을 와신상담해 1982년 한세실업을 다시 세웠다. 이미 국내 인건비가 많이 올라가고 있었던 상황이라 바로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수출 관세가 없는 지역에 공장을 세워야 해 선택한 곳이 사이판이다. 1985년에 사이판 정부 허가까지 났는데 인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농구코트부터 하수도까지 놔달라고 시위하더라. 공장 부지에 건물을 올려놓고 가동은 못 한 채 1년 반 가까이 설득을 했는데…. 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다.

Q : 결국 어떻게 했나.

A : 하수도 만들어준다고 하니 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더라(웃음). 그다음은 인력이 문제였다. 원주민들로만은 안돼서 한국·중국·필리핀에서 기술자를 데려왔다. 당시 한국 부천 공장에서도 오래 일한 직원들을 데려갔다. 지금도 베트남 등지에 우리 기술자들이 많이 나가 있다. 한세실업이 40년이 됐는데, 38년 근속한 공장장이 있을 정도다.

Q :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A : 의류 제조업은 노동 집약적이다. 해외에 나가면서 한세가 지금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이판 공장은 닫고, 중남미에서는 니카라과·아이티·과테말라에 나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에 공장이 있다. 베트남에는 ‘한세’ 마을도 있다. 직원만 2만 명 가까이 된다.

Q : 패션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5위 안에 드는 기업이 됐다. 비결이 뭐였나.

A : 역시 기술 개발이다. 전체 직원의 20%가 원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만큼 디자인·원단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 우리가 3차원(3D) 기술로 디지털 의류 샘플을 만들고, 원단 염색 업체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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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 전 세계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OEM업체가 대만에 하나 중국에 하나가 있는데, 이들의 영업이익율이 20%가 넘는다. 우리의 현재 7~8% 영업이익율을 더 높이는 것도 목표다" 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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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A : 5년 전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10년 뒤 30억 달러(약 3조9500억원) 수출하는 회사가 되자’고 말했다. 당시 17억 달러(약 2조2400억원) 정도 하는 규모였으니 직원들은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성장은 ‘복리의 마술’이더라. 매해 매출이 늘어나면서 30억 달러가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김 회장의 세 자녀는 현재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남인 김석환 부회장은 한세예스24홀딩스와 예스24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남인 김익환 부회장은 한세실업 대표이사, 막내딸 김지원 대표는 한세엠케이와 한세드림 대표이사로 있다.

Q : 자녀들과는 자주 만나나.

A : 자주 만나고, 자주 다툰다(웃음). 회사 얘기를 많이 하는데, 특히 장남이 운영하는 예스24는 플랫폼비즈니스다 보니 대체불가능토큰(NFT),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 제안 얘기를 들으면 처음엔 반응을 안 하다가 반년쯤 뒤에 ‘그거 좋을 것 같다’고 늦게 답을 하니 핀잔을 자주 듣는다. 둘째는 그래도 의류 제조업이라 내 말이 조금 통한다. 바이어들 만나는 것도 좋은데, 생산 현장에 많이 가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어쨌든 제조업체다.

김 회장의 집무실 한 편에는 너른 책장이 있다. 책으로 가득 차 있는 풍경은 여느 중역의 사무실 풍경과 비슷한데,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연도별로 읽은 책을 모아놨다는 것.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읽은 책이 책장 한 칸씩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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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녕 회장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그룹 집무실. 집무실 책장에는 해마다 읽은 책을 연도별로 모아놓았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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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스트레스를 독서로 푼다고 들었다.

A : 어렸을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당시 국민학교 때 글짓기상을 타 이승만 대통령 부부를 만난 적도 있다. 요즘에는 SF 소설을 주로 읽고 있다. 김초엽과 아서 클락, 레이 브래드버리의 책을 좋아한다. 언젠가 SF 단편 소설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회사에서 윗자리에 올라갈수록 고정관념이 생기고 머리가 굳어지기 마련이다. 터무니없는 환상 같은 SF 소설이나 문학 작품이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 김동녕 회장은...

194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을 졸업했다. 대학교수만 20여 명을 배출한 교육가 집안 출신으로 1972년 한세통상을 창업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한세실업을 세우면서 글로벌 의류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2003년부터는 사업 다각화에 나서 온라인 서점 1위 예스24, 교육 콘텐트 기업 동아출판 등을 인수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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