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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럽 맹주’ 독일서 영화같은 정부전복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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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테러단체 25명 검거·27명 조사

민주연방정부 부정, 네오나치즘 신봉

전직 연방 하원의원·현역군인 등 가담

몰락한 왕조 왕자를 국가수반 세우려

경찰 3000명 투입 대대적 체포작전 펴

G7(주요 7개국) 회원국이자 유럽의 정치·경제적 맹주인 독일에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정부 전복 시도가 적발됐다. 극우파 전직 연방하원 의원, 현역 군인 등이 몰락한 왕조의 왕자를 새 국가수반으로 세우려고 한 시도였다.

독일 당국은 쿠데타를 계획한 혐의로 극우 성향의 테러단체 일당 25명을 검거하고, 관련자 27명을 수사 중이라고 AFP 등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에만 3000여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벌였으며, 이는 독일에서 동원된 경찰력 규모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현지 매체는 평가했다.

세계일보

복면을 쓴 독일 경찰관들이 7일(현지시간) 쿠데타 계획을 주도한 하인리히 13세(71)를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있다. 독일 극우파 일당은 현 민주연방공화국을 전복한 뒤 독일 제2제국(1871∼1918년)을 모델로 한 국가를 수립해 하인리히 13세를 수반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적발됐다. 프랑크푸르트=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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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검찰과 경찰이 압수한 쿠데타 성공 후 처형·추방 대상 18명 명단이 적힌 살생부에는 올라프 숄츠 총리의 이름도 들어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특수부대 소속인 현역 군인도 포함됐다고 로이터가 현지 군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하원 의원을 지낸 여성 판사도 검거됐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 소속으로 2017~2021년 의원을 지냈으며 쿠데타 성공 후 새 정부의 법무장관직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당국은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일당이 현재의 민주연방정부를 부정하고, 1871년부터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패전 직전까지 유지된 독일 제2제국을 추구하는 이른바 제국시민(Reichsbuerger) 운동과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국시민은 제2차 대전 이후 세워진 현 독일연방공화국이 주권국가가 아니라 승전국이 세운 주식회사, 조합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이렇다 할 전국 단위 조직은 없지만 곳곳에 소규모 집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오나치즘(신나치주의)을 신봉하는 제국시민 일부 극우파는 최근 몇 년 사이 더 급진적으로 변하면서 독일의 내부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제국시민 조직원 중 약 500명(지난해 말 기준)은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소개했다.

쿠데타 성공 후 정부 수반을 맡기로 하고 역모를 주도한 자는 독일의 옛 로이스공국(公國) 왕실 후손인 71세 하인리히 13세 왕자로 확인됐다. 700여년 역사를 가진 로이스가문은 1918년 독일 제국에 편입됐고, 그 전까지 동부 튀링겐에 있던 작은 공국을 통치했다.

NYT는 “올해 초부터 하인리히를 ‘음모론자’, ‘정신 나간 노인’ 등이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거리를 둬 왔다”는 로이스가문 대변인 말을 전했다. 하인리히와 독일주재 러시아 대사관 측 인사를 연결하려던 러시아 여성도 체포됐다. 검찰은 러시아 측이 접촉요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했다는 증거나, 쿠데타 계획을 지원했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레믈궁 대변인도 이날 회견에서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묻는 말에 “이는 독일 내부의 문제다. 러시아 개입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통일 후 공산주의와의 대결이 끝나면서 준동하는 극우 세력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20년 6월에는 극우세력 침투를 이유로 특수부대 KSK 일부가 해체되기도 했다.

한편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중심가에선 6일 극우 단체 소속 청년들이 월드컵 8강 진출에 환호하며 축제를 즐기던 모로코인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네오 파시스트 성향의 극우 단체 디고스 소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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